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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부자 되세요∼

입력 | 2014-05-01 03:00:00


나는 꽤 준비성이 있는 성격이다. 심지어 산신령이 나타나 “너의 세 가지 소원을 말해 보거라”라고 할 경우 ‘무엇을 말할까’까지 미리 생각해본다. 그런데 동화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이 생각이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혹시 이런 기회가 내게 온다면 무엇을 소원해야 후회하지 않을까.

한때 순진무구한 표정의 여배우가 텔레비전에 나와서 “부우∼자 되세요”라고 말하는 광고가 히트하면서 그것이 유행어가 되었다. 광고야말로 가장 예민하게 세태를 반영한다고 볼 때, 부자가 되는 것이 많은 사람의 소원 1순위였던 것 같다.

세월호와 함께 우리 사회 전체가 가라앉은 지난주에 만난 친구는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난 몇 년 전 그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가 너무 싫었어.”

별 생각 없이 그것도 덕담이라고 따라한 적이 있는 나는 뜨끔했다. 너도 나도 ‘부자’ 되려고 일로매진하고, 돈이 최상의 가치로 떠받들어지는 사회가 되었을 때 어떤 참담한 결과가 나오는지, 우리는 두 주일 동안 눈을 부릅뜨고 가슴을 치며 바라보아야 했다. 그즈음 신문에서 ‘돈이 모든 걸 지배하는 상황에서 안전은 불가능하다’라는 큼직한 제목을 보았다. 공감한다. 돈이 타인의 안전보다 더 중요하다면, 더구나 이 사회의 주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언제 어떤 형태의 참사가 터질지 속수무책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소원은 무엇이어야 할까? 국민소득 4만 달러 국가? 대를 이어 내 자식만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인 부자? 설마,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억울한 사람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성찰할 줄 아는 품위가 있는 사회가 아닐까?

돈을 잘 버는 건 기술이고 돈을 잘 쓰는 건 예술이란 말이 있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돈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멋지고 좋은 일들이 많으니 참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부자가 되어서 제대로 돈을 쓰는 사람은 흔치 않은 것 같다. 기술이 예술로 승화되긴 어려운 모양이다.

“부우∼자 되세요”가 진정으로 덕담이 되려면 돈을 버는 기술도 깨끗해야 하고 아름답게 돈을 쓸 줄도 알아야 할 것이다. 제발 천박하고 속물적인 자본주의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성숙한 사회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그것이 지금 나의 한 가지 소원이다.

윤세영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