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연구소에서 만난 박석무 이사장. 요즘엔 하도 속이 상해서 신문도 TV도 안 본다고 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공정과 청렴으로 정성 바치기 원하옵니다(公廉願效誠)’
28세의 다산 정약용이 문과에 급제하고 나서 지은 시의 일부다.
박 이사장이 최근 경기문화재단의 도움으로 ‘다산 평전’(민음사)을 펴냈다. 1979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출간한 이후 박 이사장이 저서, 역주, 논문 형태로 저술한 다산사상 소개서는 매우 많지만, 이번에 펴낸 ‘다산 평전’은 의미가 다르다. 평론을 곁들인 다산 전기(傳記)라는 제목의 뜻 그대로, 뭐랄까 ‘박석무 버전의 다산 전기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사단법인 다산연구소를 개설해 10년째에 이른 오늘까지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라는 글을 써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리고 36만 명의 독자들에게 e메일로 보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800회가 넘게 글을 쓰고 보내면서 ‘여유당전서’를 펴 보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로 다산의 글을 읽어왔다.”(다산 평전 머리말 중에서)
1971년 전남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논문으로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을 쓰던 때부터 시작하면 40년이 넘는 세월이다. 재야 운동권 후배들이 ‘등을 떠미는’ 바람에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지만, 그 8년 동안에도 그는 ‘공렴원효성’을 잊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왜 지금 다시 공렴과 목민(牧民)인가’에 인터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겉으로 말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터져 나오고 있는 망국적 공직기강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다. (그는 기자수첩에 다산의 말을 원문 그대로 적어 보여주며) 다산은 ‘토호의 패악으로부터 민(民)을 지켜내는 것’을 목(牧)이라고 했다. 목민심서에는 그 ‘민(民)’에 대해서도 노인, 유아, 장애인, 궁한 사람, 재해를 당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흔히 다산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공무원의 바이블이라고 하는데, 그럼 목민관이라는 말도 그냥 공직자보다 오히려 호민관이나 보안관이라는 뜻에 가깝다는 뜻입니까?
“그렇다. 그런 걸 생각하면 (세월호 희생자 가족 앞에서) 라면 먹는 장면이나, ‘장관님 오십니다’ 같은 소리가 나올 수 없다.”
박 이사장은 ‘공렴’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하고 청렴한 자세를 지니되 무엇보다 정성을 다해야 국민을 지킬 수 있다는….
박 이사장은 이제 목민심서를 현대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 쓸 생각이다. ‘창작과 비평사’에서 발간한 6권짜리 목민심서가 있지만 그건 원문을 번역한 책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평가다.
“이제는 솔직히 집중해서 파고들어 갈 기력이 점점 없어진다. 최소한 1년 반이나 2년은 걸릴 거다. 그래도 나이 들어 정력을 바칠 곳이 있다는 게 행복 아니겠느냐?”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