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안전 대한민국’ 이렇게 만들자] 2차 피해를 예방하자
2014년 4월 수백명 뒤엉킨 한국 진도 체육관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하루 뒤인 17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수백 명의 실종자 가족이 바닥에 고무매트와 이불만 깔고 생활하고 있다. 진도=이훈구 기자 ufo@donga.com
#2.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집을 잃은 이재민 가운데 일부는 일본 이와테 현 오쓰치 고교 실내체육관에서 바닥에 매트와 이불을 깔고 생활했다. 이를 지켜보던 건축가 반 시게루 씨는 종이기둥과 천으로 가림막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이재민들의 사생활과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사적 공간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였다. 가림막이 설치된 뒤 이재민들은 옷을 갈아입거나 잠을 잘 때는 천막을 내렸고 낮에는 천막을 올려 다른 이재민과 소통했다.
○ ‘복지구호’와 ‘생활구호’는 피해자 가족의 권리
재난 상황에서 피해자 가족의 생활을 챙기는 것은 자원봉사자나 친척의 몫이었고, 매뉴얼이 없는 국가나 지자체의 구호활동은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가족들의 2차 피해가 시간이 흐를수록 가중되는 것 역시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차 피해란 인명과 재산 피해 등 ‘1차 피해’ 이후 벌어지는 피해자 가족들의 △사생활 노출 △생활환경 및 건강 악화 △생계활동 중단 등 추가적인 피해를 말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순 의식주만 지원하는 ‘긴급구호’ 활동이 아니라 선진 구호 형태인 ‘복지구호’ 및 ‘생활구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체육관 같은 집단수용시설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숙박시설 등을 추가로 확보하고, 전문성을 갖춘 전담공무원이 가족에게 일대일로 배치돼 가족의 불편함을 하나부터 열까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정상적인 생계활동을 못하고 있는 가족에게 부과된 공과금, 세금을 일시적으로 면제해주거나 생활비 등을 지원한다면 가장 큰 고민인 생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다.
이재은 충북대 교수(행정학)는 “피해자 가족에 대한 구호활동은 재난 대응 시스템에서 실종자 구조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국가의 재난 대응시스템이 부족해 벌어진 사건에서 구호활동은 시혜적인 ‘지원’이 아니라 가족의 ‘권리’라고 보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3월 칸막이 갖춘 일본 오쓰치 고교 체육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이재민들이 생활했던 일본 이와테 현 오쓰치 고교 체육관. 일정한 면적마다 칸막이가 설치돼 있어 이재민들의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는다. 사진 출처 반 시게루 홈페이지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경우도 피해자 가족이 2주 넘게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생활하면서 2차 피해가 커졌다. 과거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때도 수백 명의 가족이 전북 부안군청 강당에 모여 ‘난민’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고 이들의 24시간은 그대로 노출됐다. 가뜩이나 충격이 큰 실종자 가족이 열악한 공간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이중고를 겪는 상황이 2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최수희 서울대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는 “공공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있는 상태가 나중에는 또 하나의 작은 외상처럼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르몽드지는 재난사고 시 피해 가족 보도를 하지 않고 있고 일본 언론은 최대한 가족 취재를 자제하되 기사에 형용사나 부사, 최상급 등 감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
해외에서는 아예 사건 초기부터 피해자 가족의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적으로 보호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가구당 26.4m²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재민들을 14개 체육관에 분산 수용했고 일부 체육관에는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칸막이도 설치했다. 캐나다의 한 디자인그룹은 이재민을 위해 간편하게 설치할 수 있는 종이벽을 제작해 실용화한 적도 있다. 유엔 역시 재난 발생 시 1인당 최소한 3.5∼5.5m²의 공간을 확보토록 권고하고 있다. 1인당 공간이 이 기준에 미달할 경우 다른 시설에 이재민을 수용해야 하고 구호물품 역시 이 기준에 따라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
진도에 설치된 사고수습대책본부도 뒤늦게 칸막이 설치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일부 가족이 “칸막이 안에서 생활하면서 구조작업이 장기화되는 것을 지켜보라는 것이냐”며 반대해 설치를 못했다. 사건 초기부터 대응했더라면 피할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였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일 수밖에 없는 가족을 24시간 지원하는 전담인력도 중요하다. 2011년 천안함 폭침 사건 때 평택 2함대에 모여 있던 실종자 가족은 군 당국의 세심한 관리를 받았다. 구조 및 인양작업을 군이 전담했기 때문에 정보 창구가 일원화됐고 거의 실시간으로 구조 상황에 대한 브리핑이 이뤄졌다. 특히 가족당 1, 2명씩 전담 병사가 배속됐던 것이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이들은 24시간 가족 곁을 지키며 불편함이나 궁금증을 해결해줬고 건강을 수시로 체크해 이상이 생길 경우 바로 병원으로 옮겨 진료를 받게 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재난 발생 직후 전담팀이 급파돼 피해 가족을 현장으로 안내하고 별도의 숙박시설을 마련해주는 것이 원칙이다. 구조, 복구작업이 장기화하면 국가가 월급을 대신 지급하거나 직업훈련을 해주기도 하며 가족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생일파티까지 챙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천안함 사건 외에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서해훼리호 침몰 등 과거 대형재난사건에서 이런 시스템을 보여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관을 방문한 날도 상황판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가족들이 박 대통령에게 직접 전광판 설치를 요구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고수습대책본부는 결국 뒤늦게 맞춤형 도움을 줄 수 있고 전담인력을 가족당 1명씩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 글 싣는 순서 >
<1> 골든타임 다시는 놓치지 말자
<2> ‘재난 컨트롤타워’가 없다
<3> 정부 관리 감독 왜 안 되나
<4> 안전은 최선의 투자다
<6> ‘집단 위험 망각증’ 해부
<7> 두 번 실패는 안 된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