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배(1972∼)
그림자를 기다린다
나무 밑이다
그림자의 방향을 본다
바람이다
손을 넣는다
어깨가 들어간다
머리통이 들어간다
불룩하다
그림자의 소리를 듣는다
비다
그림자의 색깔을 본다
불이다
주머니 속으로
발을 넣는다
다리가 들어간다
골반이 들어간다
불룩하다
그림자의 냄새를 맡는다
꽃이다
하수구다
주머니가 툭 떨어진다
(사라지며)
그림자를 기다린다
동네에 서 있는 이동도서관에서 시집 몇 권을 빌렸다. 그중 한 권이 이 시가 실린 신영배 시집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다. 정말 시를 잘 쓰는구나! 흠뻑 빠져서 읽었다. 그의 다른 시집 ‘기억이동장치’랑 ‘물의 피아노’도 찾아 읽고 싶었다. 이렇게 매력적인 시를 쓰는, 시집을 세 권이나 낸 시인을 나는 여태 이름도 몰랐다. 반성한다.
빛이 있는 곳에서 물체에는 그림자가 생긴다. 그 그림자를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갖고 대하던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느덧 우리는 그림자를 과학적 현상으로만 받아들이고 관심을 거둔다. 그런데 ‘그림자의 소리를 듣는다/비다//그림자의 색깔을 본다/불이다’라니! 시인의 감각적인 묘사로 영혼이 옮겨 붙은 듯 그림자의 세계가 생생히 살아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