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석 한우-비빔밥까지 관광상품으로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좌용주 교수(왼쪽)가 한 의뢰인이 감정을 부탁한 돌을 살펴보고 있다. 대자율 측정을 통해 이 돌은 운석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진주=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최근 경상대 지구환경과학과 좌용주 교수(54)에게 자신을 승려라고 밝힌 한 남자가 흥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좌 교수는 한국해양연구원 극지연구센터 선임연구원 출신으로 남극 연구에도 참여했고 네 번째 ‘진주운석’을 감정한 전문가. 그는 간이 장비가 든 가방을 챙겨들고 기자와 함께 현장으로 출발했다. 경남 진주시 대곡면 월아들판 옆 남강변으로 나가자 사복 차림의 스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이 ‘이상한 꿈’을 꾸고 점찍은 현장은 첫 운석이 발견됐던 대곡면 단목리에서 직선거리로 3.3km 정도 떨어진 곳. 비스듬한 경사지에 지름 25cm가량의 돌멩이가 놓여 있었다. 무게는 30kg 이상 돼 보였다. 좌 교수는 무릎을 꿇고 앉아 ‘간이 감정’을 시작했다. 잠시 후 운석이 아니라 지구에서 흔한 ‘섬록암’이라는 판정을 내렸다. 암석의 자성을 나타내는 대자율(帶磁率) 측정 결과 5가 나왔기 때문. 이 정도 크기의 돌이 운석이라면 대자율이 800∼900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게 좌 교수의 설명이다. 운석의 가장 큰 특징인 검붉은 색도 띠지 않았다. 스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우주에서 떨어진 로또’를 기대했지만 단순한 돌이었기 때문이다.
SBS 인기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종영한 직후인 3월 9일. 외계인과 지구인의 사랑을 다룬 드라마 때문인지, 아니면 “미지의 우주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하라”는 암시였는지 서부 경남 중심도시 진주의 넓은 들판에 ‘진주(晋州)운석’이 떨어졌다. 다음 날인 10일부터 일주일 사이 ‘우주의 메신저’인 운석 4개가 또 지구로 떨어졌다.
외계에서 희한한 물체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대 혼란이 빚어졌다. 일부 전문가가 “100개 이상의 운석이 진주 일대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하자 수천 명의 ‘운석 사냥꾼’들이 진주시 대곡면과 미천면, 집현면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운석은 더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박’을 꿈꾸는 운석 사냥꾼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운석이 발견된 경남 진주시 집현면의 도로변 식당에는 운석 이름을 붙인 메뉴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위쪽사진). 아래 사진은 3월 9일 오후 한반도에 운석이 떨어지는 모습이 한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모습.
지난달 23일 오후, 두 번째 운석이 발견됐던 미천면 오방리 밭에는 부산에서 왔다는 60대 2명이 진주시가 설치한 안내판과 아크릴 보호 상자 등을 살펴보고 있었다. 운석 발견자인 박상덕 씨(80)에게 “할아버지는 대단한 행운을 만난 것 같다”며 부러워했다. 이들은 “구경을 왔다”고 했지만 등산화에 등산복을 입은 차림새로 미뤄 운석을 찾으려는 듯 보였다.
미천면 사무소 정금영 총무담당은 지난달 25일 “요즘은 운석이 발견됐던 3월 초처럼 외지인이 구름처럼 몰려들지는 않는다. 가끔 문의전화가 오긴 했지만 전남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후에는 탐사꾼을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정부와 진주시, 관광자원화 등 추진
서울대 운석연구실이 최근 감정한 뒤 보관 중인 진주 운석. 서울대 제공
정부 관계자는 “운석은 생성 초기 지구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지표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원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어 귀중한 국가 연구자산”이라며 “대책반을 통해 체계적인 운석 관리, 활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대 운석연구실 최변각 교수는 지난달 2일 국제운석학회에 진주운석 4개의 자료를 보냈다. 사진과 시료(試料)를 분석한 내용 등이다. 실물은 극지연구소와 서울대에 보관돼 있다. 이 학회의 승인이 나야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거래도 가능하다. 명칭은 4개 모두 ‘진주운석’이며 타입은 ‘오디너리 콘도라이트 H5’다. 하나의 ‘어미 돌’에서 깨어졌기 때문에 구성광물, 조직 등 모든 특징이 동일하다.
진주시는 운석의 관광자원화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하고 있다. 우선 운석 발견지점 4곳에 ‘이곳은 진주운석이 발견된 곳입니다. 소중한 자료이므로 다 같이 보존에 협조 바랍니다’라는 안내판을 세웠다. 아크릴 보호 상자도 설치했다. 진현철 진주시 문화복지국장은 “미래창조과학부와 문화재청 등이 진주운석의 해외유출 방지와 문화재 등록, 우주자연낙하 물체의 등록제 추진 등을 검토 중”이라며 “정부 방침이 결정된 뒤 운석의 관광자원화를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희 진주시장은 확보한 운석을 전시하고 운석 발견지점과 지역문화유산을 연계한 둘레길 조성, 항공특화산단과 연계한 홍보 등에 대해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운석의 확보와 관광자원화는 행정기관이 맡고 연구는 경상대가 담당하는 방법으로 역할 분담을 한다면 지역을 널리 알리는 좋은 소재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진주 인근 사천시에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생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있고 진주와 사천을 연계한 항공우주특화산단도 조성된다. 대한지질학회는 7일 오후 서울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운석토론회를 마련한다.
추가 운석 확보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진주운석과 같은 ‘오디너리 콘드라이트(H그룹)’의 국제적인 거래 가격을 g당 2∼6달러로 보고 있다. 최고가도 20달러(약 2만 원) 정도라는 것. 가장 흔한 운석이기 때문이다. 10달러로 5kg이면 5000만 원 남짓이다. 이 가격엔 ‘마진’이 포함돼 있으므로 운석 딜러들이 구입을 할 때는 이보다 더 싼 가격을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들은 우리가 진주운석에 부여하는 의미마저도 배제한 채 가격을 매긴다는 것. 소치 겨울올림픽 때 사용된 ‘첼랴빈스크 운석’도 알려진 것과는 달리 g당 20∼40달러에 거래된다고 한다.
다른 운석 발견자 B 씨는 “제대로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면 해외 운석시장에 내놓을 생각도 있다”며 “법률로 해외 반출이 막힌다면 개인적으로 보관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발견자 C 씨는 “정부 방침이 결정되는 것을 지켜봐야겠지만, 매각보다는 공공목적으로 기증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대책반 소속 지질자원연구원과 천문연구원 관계자 등은 최근 진주시청에서 운석 발견자들과 공식 간담회를 가졌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좌 교수는 “운석 발견자들에게 적정선의 보상을 해주고 이를 연구 및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제사회에는 운석이 희귀해 적은 양의 시료를 ‘빌려주고 임차하는 문화’가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형상 변경이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국제적인 관례를 따르기 어렵다. 이를 감안해 정부 대책반도 문화재 지정을 하지 않고 보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는 한 언론 기고문에서 “진주를 방문한 운석은 일확천금을 가져다주는 횡재가 아니다. 우리 인류가 46억 년의 역사를 가진 태양계 속의 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소중한 과학사료”라고 강조했다. 운석을 우리의 중요한 유산으로 간직해야 한다는 의미다.
진주=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