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 족보/임고을 글·이한솔 그림/128쪽·1만 원·샘터
샘터 제공
이 구렁이의 사연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자신의 알을 낳아 놓은 곳에 가 보니 알이 다 깨져 있더랍니다. 그 후로 자신 이외의 다른 구렁이를 보지 못해서 자신이 최후의 구렁이일지 모른다는 걱정을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에게 자신이 아는 구렁이 조상 이야기를 글로 남겨 달라 부탁합니다. 이른바 ‘구렁이 족보’입니다.
으스스한 이 구렁이, 커다란 몸통으로 스스슥 다닙니다. 주인공은 구렁이를 ‘스스 아줌마’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렇게 이름 붙이고 보니 으스스한 기분이 줄어듭니다. 목적이 있긴 하지만 스스 아줌마는 주인공을 끔찍이 생각합니다. 주인공이 고민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뜀틀 넘기를 못하는 주인공의 고민을 ‘구렁이 담 넘듯이’ 넘어가면 된다고 몸소 시범을 보입니다. 위의 그림은 주인공과 구렁이가 스르륵 담을 넘는 장면입니다. 믿어주는 만큼 신이 난 아이의 경쾌한 몸짓이 느껴집니다. 앞에 있는 구렁이의 표정이 따스해 보입니다. 둘이 부둥켜안고 춤이라도 출 태세입니다. 아이들이 커 가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단단한 자아를 형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조건입니다. 동화 속 캐릭터가 그런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구렁이 스스 아줌마가 바로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존재입니다. 캐릭터 구축이 약한 우리 동화에서, 스스 아줌마의 등장이 매우 반갑습니다. 더구나 작가가 이제 등단한 신인이라는 것이 더욱 기대를 하게 합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