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수색 장기화] “가족 잃은 슬픔 겪어봐 잘 알아” “해수장관 어떻게 할건가” 질문에… “책임 다 못한 공직자 엄중 문책”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후 전남 진도 인근 세월호 사고 현장을 방문해 민관군 합동 수색작업이 이뤄지는 바지선에서 잠수사들을 만나 악수하며 격려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이 팽목항을 찾은 것은 참사 발생 다음 날인 지난달 17일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한 ‘대국민 사과’를 두고 유가족들은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연일 박 대통령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팽목항을 전격 방문해 책임을 회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4일 오전 11시 30분경 ‘주차관리’ 옷을 입은 경호요원들이 현장에 투입되자 팽목항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 대통령은 낮 12시 9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과 함께 실종자 가족 50여 명이 모인 가족대책본부 천막에 들어섰다. 면담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러자 실종자 가족들의 응어리진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에게 “살이 타들어가는 듯한 심정이실 겁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의 슬픔을 겪어 봐 잘 알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어떠실지 생각하면 가슴이 멘다”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떨리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2일 종교 지도자들을 만나서도 “부모님을 다 흉탄에 잃어 가족을 잃은 마음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통감한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과거사를 꺼낸 셈이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의 울분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한 유가족은 박 대통령에게 “이주영 장관을 어떻게 하실 거냐”고 따지듯 물었다. 박 대통령은 “사고에 책임이 있는 사람, 죄를 지은 사람들은 철저히 밝혀서 엄벌에 처하겠다”며 “공직자와 정부 관계자도 책임을 못 다한 사람은 엄중 문책하겠다”고 말했다. 일부 유가족은 “이런 거 다 소용없다”며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외면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가족대책본부를 나와 시신확인소를 둘러본 뒤 팽목항에서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함정을 타고 실종자 수색작업이 진행 중인 침몰 현장을 찾았다. 박 대통령은 구조단의 바지선에 올라 민관군 잠수사들에게 “국민 모두가 감사하고 있다. 여러분의 헌신을 결코 잊지 않겠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2일 ‘실종자 수습→관료사회 적폐(積弊) 척결 등 근본적 대안 마련→대국민 사과’라는 향후 수습 절차를 소개한 뒤 4일 구조 현장을 전격 방문했다. 실종자 수습이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박 대통령이 관료사회를 정조준하면서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이 동요하고, 정부 역량이 분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재명 egija@donga.com / 진도=권오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