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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보면 왠지 마음이 따뜻해져요”

입력 | 2014-05-07 03:00:00

‘쿠사마 야요이展’ 6월 15일까지




6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일본 현대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의 개인전 ‘쿠사마 야요이-A Dream that I dreamed’에서 2층 전시실 작품 ‘Pumpkin, Pumpkin, Great Gigantic Pumpkin’ 앞에 관객이 몰려 있다. 물방울무늬가 가득한 호박은 1994년 일본 가가와 현 나오시마 섬에 설치한 공공 조각을 시작으로 작가를 상징하는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는 6월 15일까지 열린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엄마, 이게 뭐야? 샛노란 게 꼭 호박처럼 생겼어.”

“응, 맞아. 이 작가 할머니가 넉넉하고 수수한 호박을 무척 좋아한대.”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4일부터 열린 일본 현대예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85)의 개인전 ‘쿠사마 야요이―A Dream that I dreamed(내가 꿈꾸는 꿈)’는 연휴 끝자락임에도 왁자지껄 북적였다.

오전에는 노부부나 젊은 커플이 많아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점심시간이 지나자 자녀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이 부쩍 늘었다. 아이 옆에서 눈높이를 맞춰가며 얘기하거나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개막 사흘째인 이 전시는 연휴 동안 매일 2500명 이상 몰렸다. 쿠사마 특유의 화려한 물방울무늬 작품 앞엔 알록달록한 색감 때문인지 어린이 관객들이 많았다. 가이드북을 보며 유치원생 아들에게 작품 설명을 해 주던 박수경 씨(38)는 “이 전시는 왠지 몽환적이면서도 아이가 어려워하지 않아서 좋다”며 “누구나 마음대로 볼 수 있으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독특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쿠사마의 작품들은 강렬한 치유의 에너지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가장 중점을 뒀다. 어린 시절 편집적 강박증을 앓은 작가는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며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그에게 예술은 삶을 달래주는 치료제이자 거친 세상을 헤쳐 나가는 나침반이었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전시를 앞두고 한국의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무척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개막 직전 축하연도 취소하고 “조심스럽지만 내가 작품 활동으로 위로받았듯 다만 몇 명이라도 아픔을 다독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1978년 작가의 첫 소설 ‘맨해튼 자살중독’을 소재로 만든 2010년 작 미디어아트 ‘Song of Manhattan Suicide Addict’.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공

1층에서 3층까지 설치미술과 회화 조각 영상을 포함해 120여 점을 소개한 전시는 층마다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커다란 호박 3점이 함께 모인 대표작 ‘Pumpkin, Pumpkin, Great Gigantic Pumpkin’이나 관객이 가장 사진을 많이 찍는 ‘With All My Love for the Tulips, I Pray Forever’가 있는 1, 2층은 화려한 미감에 어린이와 청소년이 놀이터라도 온 듯 신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흑백 실크스크린으로 만든 50개의 회화작품 ‘Love Forever’나 2009년부터 시작했다는 회화 시리즈 ‘My Eternal Soul Paintings’는 매우 시적이고 은은한 분위기를 풍겨 작품 앞에 머무는 30, 40대가 많았다.

관람객 고성우 씨(42)는 “실크스크린 회화 가운데 ‘1000개의 눈’이란 작품이 맘에 들었다”며 “작가의 아픈 내면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3층 ‘Obliteration Room(소멸의 방)’은 공간 전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 물방울무늬 스티커를 붙이도록 돼 있다. 고요한 흰색 방이던 작품이 관객의 참여로 원래 모습이 소멸한다는 의미다.

팁 한 가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에 내리자마자 오른쪽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놓치지 말 것. 1966년 베니스비엔날레 야외에서 처음 선보인 설치 작품 ‘Narcissus Garden’과 함께 펼쳐진 근사한 전경을 카메라에 담는 이들이 많다. 6월 15일까지. 6000∼1만5000원. 02-580-1300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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