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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法-제도, 세모그룹 부활 도운셈

입력 | 2014-05-07 03:00:00

[세월호 참사/관피아 해부]
유병언 일가, 법정관리 악용해 빚 털고… 정책금융 저리로 대출받아 연명
비상장법인 회계감사 제도도 허술… 청해진해운 13년간 한곳서만 감사




세모-천해지 대표 검찰 출두 6일 오후 고창환 세모 대표이사(왼쪽)와 변기춘 천해지 대표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검찰은 두 사람이 회삿돈을 컨설팅 등의 명목으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에 건넸는지를 집중 조사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뉴시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가 1997년 ㈜세모 부도 이후 재기하는 과정에서 부실기업과 관련된 법·제도의 허점이 드러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을 살리려는 취지로 마련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제도가 부실기업의 빚을 탕감해주는 ‘면죄부’로 쓰이거나 특정 산업 및 업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자금이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부실기업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 전 회장 일가가 재기에 성공해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릴 수 있었던 것은 부실기업 관리 제도의 허점과 이를 방치한 정부 당국의 책임이 작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 비리 기업인에게 면죄부 준 법정관리

유 전 회장 측은 법정관리를 통해 빚의 대부분을 사실상 탕감 받은 뒤 자녀와 측근을 내세워 사실상 회사를 되찾았다. 2245억 원의 빚을 지고 있던 ㈜세모는 2007년 감자(減資) 및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통해 1115억 원의 채무를 털어냈다.

부실을 털어낸 ㈜세모를 337억 원에 인수한 곳은 유 전 회장 일가와 측근이 참여한 새무리컨소시엄. 법정관리로 부실을 털어내 ‘깨끗해진’ 기업이 회사를 부도낸 기업인 측에 다시 넘어간 셈이다. 부채를 조정하고 기업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기존 경영진에 제대로 책임을 묻지 못하는 제도적 허점 때문에 옛 오너 일가가 빚을 감면받고 깨끗해진 기업을 인수해도 막을 규제가 없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최근 실무 부장판사 등에게 인수자의 자금 출처를 면밀히 살펴보도록 주문했다. 인수 희망자와 법정관리 기업의 관계 및 인수 자금의 출처 등을 따져 법정관리가 부채 탕감의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 부실기업 연명 수단으로 전락한 정책금융


유망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에 돌아가야 할 정책금융 자금이 부실기업의 연명 밑천으로 흘러들어가는 고질병도 다시 드러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극심한 불황에 빠진 해운업과 조선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책금융 자금이 대거 투입됐다.

청해진해운 같은 부실 해운사도 이 시기에 KDB산업은행 등에서 저금리 자금을 공급받았다. 산업은행은 2012년 청해진해운 대출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대출 위험에 대한 내부 경고가 있었는데도 실적 회복세를 기대하며 대출을 강행했다. 한국은행은 최근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 비중이 2009년 10.2%에서 2012년 15.0%로 늘어났다”며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지원 제도가 구조조정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감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을 막지 못하는 허술한 회계감사 제도의 문제도 드러났다. 청해진해운은 처음 외부감사를 받기 시작한 2001년부터 13년간 회계사 3명으로 구성된 ‘세광공인회계사 감사반’에서만 회계감사를 받았다. 감사반이란 공인회계사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임의조직으로 회계법인을 세우지 않고도 공인회계사회에 등록하고 외부감사를 할 수 있다. 회계법인은 같은 회계사가 상장법인은 3년 이상, 비상장법인은 5년 이상 연속으로 외부감사를 맡을 수 없지만 감사반이 비상장법인을 감사할 때는 이런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정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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