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눈물의 팽목항] 21일째 딸 기다리는 윤종기씨 하루
아버지는 다시 바다 앞에 섰다. 매일같이 바다를 보며 막내딸 솔이를 불러보지만 아직 솔이는 아버지에게 오지 않았다. 세월호 침몰 20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는 막내딸을 그리며 윤종기 씨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꼭 감았다. 진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5일 오후 윤 씨는 진도 실내체육관 1층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 꿈에 솔이가 나왔다. 누군가 택시를 타고 집 앞에 와 솔이를 내려놓고 갔다. 허겁지겁 뛰어나가 보니 몸은 분명 솔이가 맞는데 얼굴은 솔이의 둘째 언니였다. 솔이는 두 언니 아래로 얻은 막내딸이었다. 깨어난 뒤에도 한참 동안 꿈이 잊혀지지 않았다. ‘이제 얼굴이 온전치 않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오후 3시경 정홍원 국무총리가 체육관을 방문했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 상황을 설명하는 브리핑 중간, 윤 씨는 1층 상황실을 박차고 나왔다. 매일 같은 이야기만 반복됐다. 화가 났지만 솔이를 찾으려면 수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야만 했다. 10분 뒤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상황실로 들어갔다.
저녁 내내 세월호 도면만 들여다봤다. 해경 측에서 나눠준 A4 크기의 도면. 침몰하는 배에서 솔이를 마지막으로 본 친구는 3층 출구에서 헬기 구조를 기다리는 줄 마지막에 솔이가 서있었다고 했다. ‘평소 정의감이 강했던 딸이 위급한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마지막에 섰던 것 아닐까.’
윤 씨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솔이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솔이가 떠나는 아침, 화장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 나 간다.” 딸은 문 너머에서 해맑게 인사했다. ‘그때 그 문을 열어 얼굴을 봤어야 했는데….’ 다시 만날 딸의 얼굴이 온전치 못해 알아보지 못할까 윤 씨는 무섭다.
오후 9시 16분경 체육관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무대에 설치된 대형 TV에서 사고 당시 사진과 동영상이 나왔다. 영상 공개가 끝나자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솔이와 같은 반이던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가 먼저 나와 있었다. “해경에서 탈출하라고 한마디만 했어도 우리 애들 다 살았을 텐데….” 두 아버지는 한숨만 내쉬었다.
단원고 선생님들이 찾아왔다. 함께 솔이 이야기를 하고 난 윤 씨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항상 반에서 5등 안에 들더니 나타나는 건 끝에서 5등 안에 들어가려고 이렇게 안 나오나.”
오전 2시쯤에야 겨우 자리에 누웠다. 애써 잠을 청해보지만 쉽지 않다. 체육관에 늘어난 빈자리를 보는 마음이 휑하다. 일부러 자원봉사자들에게 옆에 놓인 빈 이부자리들을 치우지 못하게 했다. 한 시간 뒤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오전 7시 30분경 눈을 뜨자마자 수습된 시신들의 인상착의를 적은 종이가 붙은 게시판으로 갔다. 밤사이 추가로 수습된 시신은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세수를 했다. 아침식사 대신 인스턴트커피를 한 잔 마시며 TV 뉴스를 봤다. 멀리서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부터 안산 가나 보네. 참… 부럽네….”
윤 씨는 팽목항으로 나갔다. 오전 9시에 있을 브리핑을 챙기기 위해서다. 오후에 체육관에서 똑같은 내용을 브리핑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수색 소식을 알고 싶었다. 이날 오전 수색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브리핑을 듣던 윤 씨의 마음이 불안하게 뛰었다.
팽목항 등대로 이어진 길가에는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며칠 전 윤 씨가 직접 쓴 리본도 있었다. ‘솔, 아빠가 항상 미안해 힘이 없어! 계란말이 해줄게 빨리 나와’ ‘아빠는 솔 사랑하는데 솔 보고 싶은데 어서 와라 사랑해 -솔 아빠가-’라고 쓴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진도=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