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가 영광과 용기에 대한 이상(ideals of glory and bravery)을 품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해도 아마 이는 오래가지 못했을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상자(the wounded and the dead)를 실어 나른 지 채 2개월도 되지 않아 박격포탄이 그의 다리에 박혀서(mortar fire dug into his leg) 6개월간 밀라노 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해야(recuperated) 했으니까요.
병원에 있는 동안 헤밍웨이는 아그네스라는 간호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그가 퇴원한 후(after he was released from the hospital) 결혼하기로 약속하지만 2개월 후 아그네스는 편지로 이탈리아 장교와의 결혼 소식을 알립니다. 헤밍웨이는 비통해하죠(heartbroken).
제이크는 기도를 하려고 예배당을 찾지만 아무 위로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형편없는 가톨릭 신자였다는 게 부끄럽고 후회스럽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죠. 헤밍웨이도 제이크처럼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과 후회(the shame and regret)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느꼈을까요?
미국의 대표적인 문호로 추앙받는 헤밍웨이는 노벨 문학상(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을 수상했고 전쟁 특파원(a war correspondent)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네 번이나 결혼했고 일생 동안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he suffered all his life from depression). 그의 몸과 마음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deteriorate) 결국 그는 61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죠(he took his own life at the age of sixty-one). 어떤 전기 작가들(biographers)은 헤밍웨이가 젊은 시절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 그의 여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겪은 뼈아픈 경험은 훌륭한 문학작품을 탄생시킨 토양인 동시에 그의 인생에 드리운 그림자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