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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순 감독 “암투병 선배 자리 맡았으니 인천金 꼭 따야죠”

입력 | 2014-05-07 03:00:00

여자테니스 대표 김일순 신임 감독
이정명 前감독과 초등 →실업 한솥밥… “망설이다 언니 간곡한 부탁에 결심”




김일순 삼성증권 테니스 감독(46)은 지난달 영광스러운 여자 국가대표팀 사령탑 자리를 제의받았지만 선뜻 응할 수 없었다. 전임자가 바로 35년 넘게 친자매 사이 이상으로 지내던 1년 선배 이정명 강원도청 감독(47)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표팀을 이끌던 이 감독은 3월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김 감독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1977년 특별활동 시간에 이 감독과 함께 테니스를 시작해 같은 중고교를 거쳐 실업팀에서도 한솥밥을 먹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도 동고동락해왔기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충격이었다. 둘 다 독신이라 가족처럼 살갑게 의지해 왔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나 싶었다. 정명이 언니는 늘 모범적이고 건강관리도 잘했는데…. 화낼 줄도 모르고 늘 속으로 삭이는 스타일이라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

김 감독은 지난 5주 동안 이 감독을 자신의 성남 집으로 불러 힘겨운 항암치료 과정을 곁에서 도왔다. 암 환자에게 필요한 식이요법도 함께할 만큼 간병에 정성을 다했다. 김 감독은 2일 이 감독과 자신의 멘토인 신순호 대한테니스협회 전무를 만난 자리에서 열흘 넘게 결정을 미뤄온 대표팀 감독 자리를 맡기로 했다. 김 감독은 “9월 인천 아시아경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데다 정명 언니의 부탁과 격려에 마음을 추슬렀다”고 말했다.

1984년 9월 26일자 5면 보도.

30년 전인 1984년 9월 동아일보에 실린 ‘안양여상 테니스 창단 첫해 만개’라는 기사에는 앳된 얼굴의 소녀 김일순, 이정명의 사진이 실렸다. 당시 이들은 제1회 서울국제주니어대회에서 단식 우승과 준우승, 복식 우승을 휩쓸었다. 성인이 된 뒤 국제무대에서도 이름을 날린 간판스타였다.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에서 은메달을 합작했고 1991년 셰필드 하계유니버시아드 복식 금메달을 땄다. 라켓 하나로 영광의 순간을 나눈 그들이 이젠 병마와도 함께 싸우고 있다.

김 감독은 “어깨가 무겁다. 내가 잘해야 언니에게도 힘이 되지 않을까. 2차 항암치료로 차도가 있어 다행이다”라고 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