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디자인 경영]<3>경쟁력 업그레이드 하려면
2012년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이 발표한 세계 주요 23개국의 국가 디자인 경쟁력 순위다.
정보기술(IT)과 자동차 부문에서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을 세계 시장에서 앞서거나, 치열하게 경합을 벌일 만큼 성장한 핵심 요인 중 하나로 제품 디자인 경쟁력이 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 차원의 전체적인 디자인 경쟁력은 일본과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다. 반면에 중국은 바로 턱밑까지 따라왔다.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은 최근 10여 년간 크게 성장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이 한 차원 더 도약하려면 중소·중견기업의 디자인 역량을 한층 더 키우고 디자인 생태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 단기 성과 위주의 대기업
삼성전자, 현대·기아자동차, LG전자같이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유명 기업들과 경쟁해온 기업들도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디자인 전략은 아직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마트폰 TV 자동차 등에서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지 5∼10년이 흘렀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디자인(Designed in Korea) 제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애플 BMW 닌텐도 몽블랑 나이키 프라이타크 같은 기업의 이름이나 제품을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모양이나 색깔 같은 특징이 한국 브랜드에는 아직 없다는 뜻이다.
박규원 한양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한국브랜드디자인학회 이사장)는 “삼성전자, 현대·기아차, LG전자 같은 기업의 주요 제품에서도 ‘이 브랜드만의 특징’이라고 내세울 만한 요소를 찾는 게 여전히 힘들다”고 말했다.
한 소비재 대기업의 디자인센터에 근무하는 A 씨(여)는 “디자인경영에 신경을 많이 쓰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중장기 과제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거의 없다”며 “연구개발(R&D)과 마케팅 부서에서 제품 기획의 틀을 잡으면 디자인은 그때그때 맞춰주는 역할만 한다”고 말했다.
KIDP의 국가 디자인 경쟁력 측정 결과에서도 한국 기업들이 단기 성과에만 힘을 쏟고 있다는 게 나타났다. 디자인 R&D 비용, 해외 특허 출원 등 장기 투자와 관련된 부문에서는 특히 약세를 보였다.
장기적으로 디자인 역량을 키우고 성과를 내려면 제대로 된 최고디자인책임자(CDO) 체제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많았다. 재무, 인사, 영업 분야처럼 디자인 전문가가 경영진에 포함돼 디자인 전략을 세우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현재 많은 대기업이 CDO가 없거나, 있어도 비전문적인 경우가 많아 체계적인 디자인경영을 실천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전문성 있는 인사를 CDO에 임명하고 권한을 충분히 줘야 한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산업통상자원부와 KIDP에 따르면 디자인 선진국들은 중소기업들도 30% 이상이 디자인 인력을 고용하거나 관련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중소기업은 이 비율이 14%에 그쳤다.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꼽히는 가구업계에도 CDO가 있는 기업이 거의 없다. 2월 한샘이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를 CDO(사장급)로 영입한 게 업계 안팎에서 화제가 된 것도 그만큼 중견기업들이 장기적인 디자인 전략을 구축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태용 KIDP 원장은 “디자인 투자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기술 투자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중견·중소기업들도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큰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수단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 산업 생태계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디자인 전문회사들의 열악한 상황도 개선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KIDP가 국내 주요 디자인 전문회사 148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72%가 프로젝트 수행 과정에서 △개발비 미지급 △일방적인 계약해지 △무리한 수정 및 추가 개발 요구 같은 불공정 거래로 피해를 봤다고 답했다.
디자인 전문회사의 가장 큰 자산인 지식재산권을 침해당했다고 답한 회사도 48%나 됐다. 피해 유형으로는 아이디어와 시안을 허락 없이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디자인의 재산권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역량 있는 디자인 전문회사의 창업과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과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김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