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마다 도시락에 얽힌 기억도 달라진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오는 것만으로 출신 계층이 드러난 시절도 있고, 점심시간마다 잡곡을 얼마나 섞었는지 혼식 검사를 받은 세대도 있다. 하굣길에는 빈 도시락 안에서 수저가 딸각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갔다. 젊은 세대는 밥과 계란프라이, 김치, 고추장을 양은도시락에 몽땅 넣고 흔들어 먹는 것을 문화적 코드로 즐긴다.
▷최근 일본에선 ‘461개 도시락은 아버지와 아들, 남자의 약속’이란 수필집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내와 이혼한 40대 가수 아빠는 외동아들의 고교 입학식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년간 꼬박꼬박 아들의 도시락을 쌌다. 부엌일에 서툰 중년 남성이 도시락을 통해 애틋한 부정(父情)을 전했던 스토리를 읽고 “요리책을 읽고 눈물이 난 것은 처음”이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반찬을 만들며 아들을 생각했고 아들은 도시락을 먹으며 아버지를 떠올렸을 터다. 아버지는 461개 도시락을 통해 461가지 추억을 선사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