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색깔=꿀색’
애니메이션 영화 ‘피부색깔=꿀색’은 정체성을 이식당한 한 소년의 성장기다. 미루픽처스 제공
1971년 5월 11일, 몇 살인지도 확실치 않았던 융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벨기에로 입양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것. ‘얼굴에 멍자국이 없었다면 미국이나 뉴질랜드처럼 더 좋은 곳으로 입양됐을지도 모른다’고 융은 생각했다. 고아원을 벗어나 처음 느껴보는 안온한 가정에는 이미 네 명의 아이가 있었다. 어머니는 성격이 급했지만 따뜻한 분이었다. 몇 년이 흘러 또 한 명의 한국 아이가 융의 집에 온다. 융은 발레리라고 이름 붙여진 한국에서 온 여동생에게 가족의 관심이 쏠리는 게 싫다.
융이 어느 날 학교에서 사고를 쳤다. 주변에 떨어진 식권을 몰래 주워 주머니에 넣은 것. 어머니는 “썩은 사과가 우리 애들까지 썩게 한다”며 융을 혼냈다. 융은 성적표까지 조작해 학교에서 문제아로 찍힌다. 그의 가슴에는 큰 멍이 든다.
영화에는 같은 학교를 다닌 한국인 입양아 친구들의 불행한 삶도 담겨있다. 그들은 머리에 총을 쏘고, 목을 매달고, 손목을 그어 죽었다. 살아남은 친구는 정신병원을 오갔다. 최근 방한한 융 감독은 “친구들이 자살한 장면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 장면을 그리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감독은 어릴 적 가족이 비디오로 찍은 실사 장면과 애니메이션을 절묘하게 직조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림에서는 서양인 캐릭터들조차 동글동글하게 묘사돼 한국적 화풍이 느껴진다. 2012년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축제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 상을 받았다. 가족에 대한 애증이 잘 녹아있는 영화로 가족 단위의 관객에게 안성맞춤이다. 12세 이상.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