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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범석]슬프지만… 조금씩 ‘착한 소비’를

입력 | 2014-05-09 03:00:00

[세월호 참사/정부 대책]




김범석 기자

“가족 같은 직원을 나가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 올까 봐 겁나요. 한 푼이라도 벌어보려는 애들인데….”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에서 15년째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정연섭 씨(50)는 최근 고민에 빠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매출이 그전보다 20%나 떨어졌다. 배달주문 전화는 뚝 끊겼고 맥주를 마시며 닭고기를 먹던 직장인들의 발길도 끊어졌다. 자연스레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인건비도 그중 하나다. 종업원 5명 중 누군가에게 나가 달라는 말을 해야 할까 봐 걱정이다. 정 씨는 “사회 분위기상 힘들다는 말을 하기조차 조심스럽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먹는 것과 입는 것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다. 내수 경기도 침체에 빠졌다. 그 여파로 서민인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13년째 삼겹살집을 운영하고 있는 채우영 씨(40)는 최근 3주 동안 20명 이상의 단체회식 예약을 취소하겠다는 전화를 5통이나 받았다. 하루 매출은 40만∼50만 원이나 줄었다. 채 씨는 단체회식 공간으로 쓰던 2층 문을 아예 닫아놓을지 고민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마찬가지다. 근로자의 날과 어린이날, 부처님오신날이 몰려 있던 이달 황금연휴에도 소비심리는 살아나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10% 이상의 매출 상승을 경험했던 백화점들은 1∼2% 매출 성장이란 초라한 성적을 거뒀다.

급기야 위축된 소비심리를 살려보겠다며 정부가 나설 예정이다. 9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긴급 민생대책회의가 열린다. 그렇지만 곤두박질치는 소비심리를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2003년 대구에서 지하철 방화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천안함 폭침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소비심리가 회복되기까지는 몇 개월씩 걸렸다. 수많은 10대 고등학생이 차가운 바다에 빠졌고 단 한 명도 구출되지 못했다. 지금은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절망감을 줄일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슬픔에 잠겨 식음을 전폐하면 몸이 상하는 것처럼 일정 수준의 경제활동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경제가 흔들린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우리 주변의 또 다른 이웃들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웃을 살리기 위한 ‘착한 소비’가 필요한 이유다.

13년 전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일상은 계속된다(Life goes on)”고 말하며 정상적인 소비 활동의 중요성을 호소한 바 있다.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다. 힘들어도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김범석·소비자경제부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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