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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허진석]정부에만 기댈 문젠가

입력 | 2014-05-09 03:00:00


허진석 채널A 차장

먼저 고백하건대 세월호 참사 후에도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는 잠깐 마트에 들렀다. 약속 시간에 늦었다며 과속도 했다. 참사를 지켜본 머리는 안전 문화를 떠올렸지만 몸은 여전히 ‘하던 대로’다.

규정 준수에 관한 대한민국의 수준을 우린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규정대로 하자고 입 밖에 꺼냈다가는 순진하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사업을 깨끗하게 하겠다며 규정대로만 했다가는 주변의 따돌림으로 생존까지 위협받곤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규정 미준수가 낳은 세월호 ‘사건’의 공범이다. 화물 적재 규정 등을 지키지 않아 세월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기울었고, 구조 과정에선 선장과 승무원이 자신들이 해야 할 임무 규정을 저버렸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뜻밖의 일인 ‘사고’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사건’임이 명백하다. 침몰 현장에 간 해경과 대책본부를 꾸린 공무원들도 불완전한 매뉴얼과 미숙한 대처로 그 뒤를 이었다.

우리가 고귀한 생명을 잃은 것은 있던 규정마저 지키지 않아서다. 제2의 세월호 사건을 막기 위해 정부에 모든 책임을 지우는 건 쉬운 일이다. 그렇게만 해서 가능하다면 천번 만번 정부를 비판하겠다. 정부의 책임이 무거운 건 분명하지만, 결국은 ‘우리’ 문제다.

규정 준수를 업신여기는 문화는 휴전 상태에서 실시하는 민방위 훈련까지 ‘시늉’으로 만든 상태다.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로 대피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정작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그 훈련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방공호를 찾아가는 길과 통신 두절 상황에서 내 가족과 만날 장소는 머리가 아닌 내 몸이 알아야 정상이다. 지진 대피 훈련이나 매년 맞는 태풍과 홍수에 대처하는 방법도 흉내만 낸다. 정부가 만든 많은 매뉴얼에는 ‘신속하게 대피한다’ ‘안전하게 높은 곳으로 몸을 피한다’와 같은 있으나 마나 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몸에 배도록 하는 훈련을 아예 염두에 두지 않아 온 폐단 때문일 게다.

대통령은 적폐를 도려내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런 다짐은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에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건 순진하고 위험한 판단이다. 세월호 참사를 겪고도 몸은 여전히 관행을 따르는 자신을 돌아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허진석에 깐깐한 우리 이웃을 폄하하지 않는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유치원 통학차량에 아이를 태워 보내는 어머니가 ‘왜 안전벨트를 채우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 무안하지 않아야 하고, 택시 운전사에게 ‘안전속도를 지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은 많이 걸릴 것이다. 그렇지만 안전벨트 문화를 확산시킨 걸 보면 우리는 해낼 수 있다.

안전 문화는 마음만 먹는다고 되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귀찮고, 시간이 더 많이 걸리고, 비용까지 더 드는 엄청난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물으며 모두가 다짐해야 하는 일이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은 이렇게 승화시켜야 옳다. 남겨진 자의 의무다.

허진석 채널A 차장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