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막눈이 산석의 글공부/김주현 글·원유미 그림/80쪽·1만1000원·개암나무
개암나무 제공
조선시대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산석은 ‘돌머리’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동네 훈장님이 “괜스레 책상머리에 앉아있지 말고 그 시간에 나무를 베든 농사일을 도우라”며 서당 출입을 금했을까.
산석도 그런 자신이 너무 미웠다. 그래도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한양에서 유배 온 큰 선비가 서당을 연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하지만 싸리문 밖만 기웃거리길 여러 날. 먼저 말을 붙여준 한양 선비에게 겨우 입을 뗀다. “저, 저…저 같은 아이도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선비가 답한다. “공부는 너 같은 아이라야 할 수 있다. 너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너라야 할 수 있다.” 놀라는 산석에게 선비는 설명한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머리 좋은 사람은 자신의 머리만 믿고 소홀하게 공부한다. 막힘없이 글 잘 쓰는 이는 자신의 재주에 마음이 들뜨기 쉽다. 배우고 바로 깨닫는 사람은 공부를 대충 하니, 그 깨달음이 오래가지 못한다.”
산석은 이후 선비를 스승 삼아 평생에 걸친 공부를 시작한다. 산석은 양반이 아니라 글공부를 해도 벼슬길에 오를 수 없었다. 산석은 말했다. “공부는 출세와 관계없이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인걸요.” 스승도 화답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은 벼슬을 하기 위해서도,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도 아니다. 마음을 넓히고 살아가는 힘을 얻기 위해서다. 네 인생이 더욱 크고 환하고 풍성해지기 위해서다.”
스승의 이름은 다산 정약용. 산석은 그 다산이 가장 아꼈던 제자, 황상이다. 황상은 훗날 자부심 높기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조차 인정한 큰 학자가 됐다. 진짜 공부가 뭔지를 꿰뚫은 글만큼 곱디고운 동심을 포착한 그림도 일품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