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장도… 유정충 ‘하나호’ 선장의 살신성인
1990년 3월 1일 선원 21명을 탈출시킨 뒤 배와 함께 침몰해 실종된 유정충 하나호 선장의 동상. 세월호 참사 이후 유 선장의 살신성인 정신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속초=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세월호 이준석 선장과 달리 비슷한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시맨십을 발휘한 영웅이 있다. 고(故) 유정충 하나호 선장의 사례는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선장의 시맨십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유 선장은 1990년 3월 1일 오후 1시 51분경 제주도 서남쪽 370마일 해상에서 속초 선적 100t급 오징어채낚기선인 ‘602 하나호’를 이끌다 침몰 위기를 맞았다. 갑자기 몰아친 강풍과 4m 높이의 거센 파도로 배 안에 물이 들어차면서 배는 기울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유 선장은 먼저 선원 21명을 구명정으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누군가 배에 남아 인근 배들에 구조신호를 보내지 않으면 구명정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유 선장은 구조신호를 보내기 위해 조타실에 홀로 남았다. 그런 뒤 5분도 안 돼 배는 뒤집혀 버렸다.
지금은 선장이 된 당시 하나호의 막내 선원 최호 씨(48)는 “비상벨이 울린 뒤 선장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구명정을 펴고 빨리 탈출하라’고 지시했다”며 “만약 선장님이 구조신호를 보내지 않고 구명정에 올랐다면 우리 모두 수장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하나호 선원 21명을 구조해 제주도로 옮긴 속초 선적의 만성호 김만홍 선장(70)은 “유 선장은 선원들을 가족처럼 아끼던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유 선장의 살신성인은 구조된 선원들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유 선장의 장례식은 같은 달 9일 전례가 없던 ‘전국 어민장’으로 치러졌다. 정부는 이후 유 선장에게 국민훈장 목련장을 추서했다. 강원 속초시 엑스포공원 안에는 현재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지난달 30일 유 선장의 동상 앞에는 누군가가 놓고 간 국화 한 다발과 노란 리본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속초=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