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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섭 박사 “박주영, 아픈 티를 가장 안내는 선수”

입력 | 2014-05-12 03:00:00

홍명보호 주치의 송준섭 박사




축구 국가대표팀 주치의 송준섭 박사가 자신이 대표원장으로 있는 서울 강남구 논현동 서울제이에스병원 진료실에서 무릎 모형을 들고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기성용(선덜랜드)의 부상 부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축구 국가대표팀 주치의인 송준섭 박사(45)와 인터뷰 약속을 잡고 그가 대표원장으로 있는 서울제이에스병원으로 찾아간 7일. 환자들이 밀려 있었다. 인터뷰는 약속 시간에서 20분가량 지나 시작됐다. ‘환자가 이렇게 많은데 한 달 넘게 병원을 비워도 괜찮느냐’고 묻자 그는 씩 웃기만 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이 경기 파주 축구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로 소집되는 12일부터 대표팀의 월드컵 일정이 끝날 때까지 병원 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송 박사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훈련 수당을 받는 것처럼 소집될 때마다 하루 수당을 받는데 10만 원이 안 된다. 그는 “병원을 비우는 건 원정 대회 때마다 있던 일이라 괜찮은데 곧 태어날 늦둥이 때문에 이번에는 신경이 좀 쓰인다”고 말했다. 아내는 20일 셋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다.

송 박사는 2007년 대표팀 주치의를 맡은 뒤로 최근 한두 달 사이가 가장 바빴다. 부상 치료를 위해 대표팀 소집에 앞서 조기 귀국한 유럽파 선수들 때문이다. 이들이 귀국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이 송 박사의 병원이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의 부상 정도를 설명하느라 송 박사의 얼굴은 TV에서도 자주 보였다.

팬들 사이에 논란이 된 유럽파들의 조기 귀국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월드컵 대표팀 최종 명단이 발표되지 않았고 소속 팀의 리그 경기가 남아 있는데도 선수들을 귀국시켜 대표팀 주치의에게 치료를 받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송 박사는 “우리가 무슨 권한으로?”라며 되묻듯 말했다. 그는 “전적으로 소속 구단이 선수들과 의논해 내린 결정이다. 선수들한테 급여를 주는 소속 팀이 허락하지 않는데 우리가 (선수들한테) 들어오라 마라 할 수는 없다. (조기 귀국은) 구단들이 다 동의한 부분이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팀 주치의를 맡은 뒤로 2009년 이집트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과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광저우 아시아경기, 2012년 런던 올림픽 등 굵직한 대회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동안 봐온 선수 중 아픈 티를 가장 안 내는 선수가 누구인지 묻자 송 박사는 “박주영(왓퍼드)”이라고 했다. 그는 “아픈 걸 무작정 숨기는 것도 좋은 건 아니지만 아프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 게 팀 분위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리는 없다. 박주영은 감내할 건 하면서 자기 역할을 하는 그런 선수다”고 했다.

선수들의 부상 정도와 몸 상태를 살펴 감독에게 보고하는 게 주치의의 역할이다. 새끼발가락 염증 부상으로 8일 발표된 월드컵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명에 들지 못한 박주호(마인츠)처럼 “(회복이) 어렵다”는 매몰찬 의견을 감독에게 전달해야 할 때도 있다. “주치의 생활을 시작하고 초기 2년 정도는 연민의 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굉장히 힘들었다. 선수들하고 같이 지내다 보면 정도 들고 그러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게 나한테도 선수한테도 팀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지금은 그런 감정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가 처음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을 때와 지금은 달라진 것이 많다고 한다. 송 박사는 의료 장비가 제대로 갖춰진 것을 가장 큰 변화로 꼽았다.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의 축구협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첨단 의료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처음 주치의를 맡았을 때는 시골의 병원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2009년 4억 원의 예산을 들여 레이저 치료기와 체외충격파 치료기 등 고가의 의료 장비를 구입했다. 이 장비들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 때도 비행기에 실어 현지로 가져간다.

선수들의 인식이 변한 것도 또 다른 변화다. 그는 “2006, 2007년만 해도 선수들은 웬만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치료나 수술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내에서 치료를 받는 걸 더 선호한다.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그쪽의 의료 수준을 경험해 보니 한국과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의료진과의 의사소통이나 치료 환경을 생각하면 국내가 더 나을 수 있다.” 송 박사는 “30일 미국 마이애미로 출국하는 23명의 월드컵 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 일정을 마친 뒤 모두 같은 비행기로 귀국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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