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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이광목]대형참사를 어떻게 수습하는가가 국격을 보여준다

입력 | 2014-05-12 03:00:00


이름을 밝히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은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체육관을 말없이 쓸고 닦았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했지만, 그나마 시민사회는 희망을 보여줬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美 시애틀 거주·공인회계사

세월호의 비극은 우리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 적나라한 총체적 부실 앞에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고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이 큰 상처의 아픔도 치유가 되겠지요. 지금은 결연한 의지와 각오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나라 전체에 그동안 쌓여 있었던 모든 문제를 일시에 바로잡으려는 듯 결의를 보이고 있지만 이런 우리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불의의 사고와 재난은 공동체가 지속되는 한 피할 수 없는 일일지 모릅니다.


분노를 어떻게 승화할 것인가

물론 불행한 일, 특히나 이번 일처럼 어린 목숨들이 대거 희생되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사가 우리가 바라는 대로만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고 또 그런 것이 인생의 참모습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다짐과 함께 재난과 불행을 피할 수 없는 우리 인생살이의 한 부분으로 본다면 이런 피할 수 없고 반갑지 않은 손님이 우리를 찾아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승화시킬 것인가도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닌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 약한 존재입니다. 또한 예정된 죽음이란 것도 없습니다. 이 죽음을 어떻게 우리의 삶과 조화를 이루고 인격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며 준비된 자세로 맞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삶을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과제입니다. 사실 한 인간의 참모습과 품위는 그 사람과 헤어질 때 또는 그가 어려움에 처한 순간에 드러나듯이 한 사회나 국가의 ‘격’과 품위도 좋고 행복한 일들에 둘러싸일 때가 아니라 도전과 어려움, 시련을 당했을 때에야 비로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참사를 두고 “세월호 침몰과 함께 대한민국의 국격도 함께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국격이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높았는데 이 사고로 인하여 떨어졌다는 뜻인지 그 참뜻은 모르겠으나 우리 모두 자신에 대해 나름대로의 평가기준은 가지고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사고발생 자체가 국가의 위신과 격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도 술에 취한 기사가 기차를 몰아 사고가 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니까요. 또 배라는 교통수단이 존재하는 한 해상사고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발생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의 위신과 품격을 떨어뜨리느냐 아니면 고양시키느냐 하는 것은 대형사고가 발생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자체보다는 사고가 일어난 뒤 그 처리 과정에서 사람들이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 기준에 맞게 행동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린 문제는 아닐는지요.


재난 앞에 절제력 보여준 시민정신


이번 세월호 사고로 세계 사람들에게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하였을까요? 제가 살고 있는 미국의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뉴스를 통해 접하는 세월호 소식은 그 보도 빈도로 볼 때 말레이시아 실종 여객기(편명 MH370)보다는 뉴스 비중이 덜한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접한 세월호 소식은 대략 3번 정도의 보도 물결을 탔는데, 최초의 사고 발생 보도, 그 후의 구조현장 보도, 그리고 가장 최근의 보도로는 숨진 학생들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동영상 등이 그것입니다. 참으로 아쉬웠던 점은 앞의 두 보도가 한국인의 긍지와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입니다. 승객과 배를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의 모습은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남 탓보다 내 탓 먼저 아닐는지

이번 사고와 타이타닉 호 사고가 대비가 되어 보이는 것은 저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대지진이 휩쓸었을 때 보여준 일본 사람들의 행동이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타이타닉 호의 선장은 죽음으로 최선을 다한 직업의식의 전형을 보여주었고 일본 사람들은 질서의식과 자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과 일본 사람들은 재난을 통하여 그들의 국격을 높였다고 생각됩니다. 나라의 품위는 결국 모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인류 보편의 가치 기준에 맞게 행동할 때에 비로소 얻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위의 두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한국의 분위기는 모든 잘못을 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정부를 향해 그 분노의 화살을 퍼붓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정부가 제대로 대응을 못했으니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요. 저 역시 정부를 감싸거나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남을 향해 분노를 쏟아놓기 전에 조금만 자제하고 과연 나의 분노가 타당한 것인지 또는 나는 과연 이렇게 분노할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자세가 아쉽습니다. 저는 혹여 이번 일로 대한민국 사회 전체적으로 지나친 자책과 감성적인 분위기에 파묻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이 설 자리가 지나치게 좁아지지 않았나 염려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자기의 직분을 다하는 사람을 볼 때, 남의 어려움을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을 볼 때 그리고 진정으로 도움을 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이웃들의 따뜻한 얘기를 들을 때 감동을 느낍니다.

일이 터졌을 때 남을 향해 분노하고 손가락질하기보다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이 사는 사회, 붐비는 장소에서 다른 사람의 어깨를 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예절바른 사람들이 많은 사회,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킬 줄 아는 젊은이들, 그리고 자기의 직분을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 국격이 있는 나라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이번에 일어난 참사는 우리나라 곳곳에 쌓여있던 부정부패, 적당주의, 법을 지키면 바보라는 생각,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 물신주의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모두들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희생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이 더 좋은 나라가 되려면 이제 남을 향한 분노를 거두고 우리들 각자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차분히 생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광목 美 시애틀 거주·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