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해경 개혁 어떻게] 수술대 오른 해경 3大 문제점 ① 허둥대다 초동대응 실패 ② 재난구조 훈련 소홀 ③ 전문인력-예산 태부족
배를 침몰시킨 것은 선원들의 잘못이지만 배 안에 있던 생명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데엔 해경의 책임이 크다. 승객 300여 명을 살릴 몇 차례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해경은 이를 놓쳤다. 해경의 초기 대응 부실과 원인을 들여다봤다.
해경이 지난달 28일 공개한 세월호 침몰 당시 최초 구조 상황이 담긴 동영상의 한 장면. 해경의 123구명단정이 기울어져 있는 세월호로 접근하고 있다.
경비정의 출동 과정도 문제다. 신고를 접수한 해경은 당시 사고 해역에서 12마일(약 18km) 떨어진 지점에서 경계근무를 서던 123정 등에 출동명령을 내렸지만 이 경비정은 해역에 도착하는 데 걸린 32분 동안 세월호의 침몰 상태 등을 묻는 교신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123정이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는 과정에서 세월호와 교신하며 선실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인원 등을 미리 파악한 뒤 갑판 등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면 더 많은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다.
이는 엉터리 구조 과정으로 연결됐다. 현장에 도착한 123정은 엉뚱하게도 일반 승객이 아닌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을 가장 먼저 구조했다. 또 123정에 승선한 경찰관 14명이 출동 과정에서 서로 역할을 분담했다면 해상구조는 물론이고 선체 진입도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초기 구조도 부실했지만 사건 이후 대응에서도 연신 헛발질을 했다. 해경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달 16일 청해진해운에 “대형 크레인을 갖춘 샐비지 선박을 동원해 신속히 인양한 뒤 결과를 해경에 통보해 달라”는 황당한 공문을 발송했다. 또 해경은 6일 수색작업 도중 숨진 민간잠수사 이광욱 씨(53)의 사고 직후 이 씨를 “언딘 소속 잠수사”라고 책임을 떠넘겼지만 사실은 해경이 이 씨의 모집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대한인명구조협회 이원태 서울지회장은 11일 본보 인터뷰에서 “해양경찰청 해상안전과 박모 경감이 이 씨가 숨지기 이틀 전 언딘 관계자와 함께 이 씨를 섭외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경감도 “(민간잠수사를 모으기 위해) 4일 팽목항에 있는 민간다이버지원센터 천막에 갔다”고 인정했다.
8일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정문 앞 바리케이드에 한 시민단체가 해경 수사를 촉구하는 의미로 노란색 종이배를 붙여 놨다.
각종 해상사고에 대비한 전문 구조인력과 예산이 부족한 것도 문제다. 잠수가 가능한 해경의 구조 전담인력은 전체 232명에 불과하다. 2006년 지방해양경찰청을 신설한 뒤 경찰관이 2200여 명이나 급증했지만 구조인력은 8.7%에 불과한 191명이 늘었을 뿐이다. 올해 관련 예산은 208억 원으로 전체 예산의 1.86%에 그치고 있다. 사고 당시 심해 잠수사가 포함된 해경 특수구조단은 자체 헬기가 없어 김해와 목포 공항을 거쳐 현장에 가는 바람에 오후 1시 40분에야 도착했다.
○ 조직 설치 법률 근거도 없어
현재 안전행정부 산하 외청인 해경은 경찰(경찰법), 검찰(검찰청법)과 달리 대통령령에 의해 설치 운영되고 있다. 구조활동 등 전문화된 업무수행이 필요한 기관임에도 해경 설치의 법률적 근거조차 없다 보니 전문성을 키우기는커녕 경찰 고위간부 출신들의 인사이동 자리 중 하나로 인식돼 왔다. 경찰공무원법상 해경청장은 현직 치안총감만 부임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해양 관련 경력을 쌓은 경찰이 퇴직하면 원천적으로 해경청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 해경 출신 해경청장은 김석균 현 청장과 2006년 8대 권동욱 전 청장 단 2명뿐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29일부터 해경 감사에 들어갔다. 검찰도 해경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수사할 예정이다. 감사와 수사 결과가 나오면 세월호 참사에서 낙제 수준에 가까운 위기대응 능력을 보여준 해상치안기관인 해경 조직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진도=이은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