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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민병선]칸영화제 중독

입력 | 2014-05-12 03:00:00


민병선 문화부 기자

노천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소매치기가 많다는 말에 바지 앞주머니에 지갑을 넣었는데, 하얀 손 하나가 쑥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흰 손을 잡았다. 손의 주인을 돌아보니 20대 청년. 그는 웃고 있었다. 나도 어색한 웃음을 지을 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옆 자리에 앉은 다른 나라 사람들 왈. “(여기서는) 원래 그래요. 경찰서 가봤자 복잡해지기만 하니 그냥 보내줘요.” 괜치 까칠하게 굴어봤자 나만 손해이지 싶었다. 내 주머니를 탐했던 청년은 인파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알고 보니 이때는 인근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소매치기도 원정을 온단다. 2012년 이맘때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겪은 일이다.

14∼25일(현지 시간) 올해도 칸영화제가 열린다. 1946년 시작된 영화제는 올해로 벌써 67회째. 영화의 원조국가(프랑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인 프랑스는 1932년 이탈리아의 베니스가 세계 최초로 영화제를 만들자 이에 자극을 받았다. 정부가 나서 남부의 휴양도시 칸에 영화제를 열었다. 관이 주도해 만든 영화제는 베니스, 독일의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세계 영화제는 칸영화제 일강(一强) 체제다. 베니스가 조직위원회의 방만한 경영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 칸영화제는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전 세계의 예술 감독들은 칸영화제만을 보고 작품을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도 벨기에의 다르덴 형제 감독, 누벨바그의 살아있는 전설 장뤼크 고다르 감독, 영국의 자존심 켄 로치 감독 등이 경쟁부문에서 황금종려상(최우수작품상)을 두고 경쟁한다.

좋은 감독들이 몰리면 유명 배우들도 온다. 할리우드의 스타들도 칸영화제 참가를 갈망한다.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앞에서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2차로 도로는 매일 저녁 배우 반, 일반인 반이다. 운이 좋으면 길을 걷다가 앤젤리나 졸리와 마주치기도 하고, 호텔 로비에서 브래드 피트와 스쳐 지나갈 수도 있다. 인구 20만 명에 불과한 작은 도시 칸은 이 기간 동안 세계의 문화 수도가 된다.

영화제는 꿈을 팔아 주머니를 채운다. 영화제 마켓에 나온 작품을 사기 위해 세계의 바이어들도 몰려든다. 지난해 칸영화제 측이 판매 상담 부스 임대와 기념품 수익 등으로 벌어들인 돈이 100억 원이 넘는다. 관광객이 몰려 호텔 방값은 하룻밤에 수백만 원이 넘는다. 축제 기간에 주민들은 휴가를 떠나며 아파트를 빌려주고 큰 돈을 번다. 길거리 햄버거 하나에 2만∼3만 원이 넘는 것도 예사다. 몰려드는 인파에 소매치기도, 칸도 즐겁다.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제는 부산영화제다. 1996년 시작된 부산영화제는 짧은 역사에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했다. 하지만 부산영화제에 세계 최고의 감독과 스타들이 오지는 않는다. 그들이 와야 관객도 관광객도 돈도 몰려온다. 해운대 바닷가를 거닐다가 앤 해서웨이와 마주치는 날을 상상해본다.

민병선 문화부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