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2001년 발생한 9·11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공간이 사고 현장에 ‘부재의 반추(Reflecting Absence)’라는 이름으로 조성한 9·11 추모공원이다. 이스라엘 출신 미국 건축가 마이클 아라드와 조경 건축가 피터 워커의 작품이다. 이들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서 있던 자리에 각각 깊이 9m, 면적 4000m²(약 1210평) 규모로 쌍둥이 연못을 만들었다. 테러 희생자 약 3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가장자리에서 그라운드 제로 쪽으로 물이 떨어지는 분수 연못이다. 연못 주변에 심어놓은 나무 가운데는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아 ‘생존 나무’라 불리는 배나무가 있다. 15일에는 공원 인근에 완공한 추모박물관 헌정식도 열린다.
송하엽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는 “땅값이 비싼 맨해튼에 조성된 대형 추모시설은 테러의 아픔을 드러내며 세계인들에게 교훈을 주는 상실의 기념비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자리엔, 사고 몇 시간 뒤면 말끔해지는 교통사고 현장처럼 여전히 더 높은 빌딩이 지어지고 더 빠르게 차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9·11 추모공원은 쌍둥이 빌딩 자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9·11 당시 항공기가 건물 벽을 들이받아 184명이 목숨을 잃은 펜타곤은 파괴된 부분을 복구한 뒤 희생자들을 기리는 예배당과 추모의 복도를 짓고, 건물 밖엔 추모공원을 만들었다. 한국 국방부라면 적의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기는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부끄러움을 기억하기로는 독일이 한 수 위다. 베를린 중심의 2만 m²가 넘는 땅엔 2711개의 콘크리트 기둥이 묘지처럼 늘어서 있다. 유대인 출신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의 설계로 종전 60주년인 2005년 5월 개관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수도 한복판에 ‘우린 가해자’라고 어두운 과거를 공언하는 이 상징물은 독일의 성숙한 역사의식을 보여주고 세계 평화를 호소하는 명작으로 꼽힌다.
우리도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자. 그곳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의사자들의 살신성인 정신과 구조작업에 나섰던 이들의 희생적인 활동을 기록하는 곳이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왜 일어났고, 구조를 책임진 이들은 소임을 다했는지 낱낱이 따져 묻는 곳이어야 한다. 뱃일을 하려는 이들에겐 ‘시맨십(뱃사람 정신)’을 다짐하고, 우리 모두가 다시는 못난 어른이 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는 곳이어야 한다. 그래서 유족들은 소중한 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는 공간이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할 용기가 없다면 부끄러운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