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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마다 가위 눌리는 잠수사… “꿈에서도 학생들이 아른거려”

입력 | 2014-05-13 03:00:00

[세월호 참사/팽목항 트라우마 3제]




진도의 잠수사들은 꿈에서도 물속을 헤친다. “여기 한 명 더 있다”는 잠꼬대를 하기도 한다. 12일 진도 서망항에서 민간 잠수사 17명이 바지선을 타고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진도=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손가락 끝에 느낌이 왔다. 더 깊이 더듬었다. 머리 가슴 팔. 침대 매트리스가 누르고 있다. 들어올렸다. 시신을 빼냈다. 왼쪽 옆구리에 끼고 선체를 빠져나갔다. 눈앞에 일어나는 온갖 부유물. 시야는 10cm가 채 안 됐다. 민간 잠수사 이상진 씨(49)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신의 환영이 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민간 잠수사들이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잠수사들은 계속되는 수색작업에 심리치료나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는 받을 엄두도 못 내는 처지다. 세월호 사망자 시신을 30여 구 찾아내 수습한 이 씨는 12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대로 방치하면 잠수사들이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언딘리베로 바지선에서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다.

이 씨는 동료 잠수사들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악몽에 시달린다고 호소했다. 바지선 위 컨테이너에서 잘 때 몇몇 잠수사는 가위에 눌린다. 며칠 전에도 한 동료 잠수사는 자다가 갑자기 “그 구역, 거기에 아직 한 구 남았어. 빼내야 하는데!”라고 잠꼬대를 하며 악몽에 시달렸다. 이 씨는 “시신을 보면 그 모습이 며칠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발견한 시신을 못 가져오면 강박관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수색작업 중 위험하고 힘든 부분은 경험이 많은 민간 잠수사가 주로 맡고 있는 실정이다. 해경 잠수사와 함께 2인 1조로 선체까지 접근하면 해경은 선체 외벽이나 유리창에서 공기호스를 잡고 대기한다. 붕괴가 진행되는 선체 내부로 진입해 손으로 더듬어가며 시신을 찾아내는 건 민간 잠수사 몫이다.

이 씨는 “공포에 시달리며 작업하면서도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는 게 지금 우리 처지”라고 말했다. 이 씨는 “작업이 끝난 잠수사들이 편하게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거주지 주변의 병원을 정부가 지정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나는 이전에 시신을 여러 번 수습해본 경험이 있는데도 정신적으로 많이 힘든 상태다. 바지선에는 시신 수습이 처음인 잠수사도 있다. 그들은 얼마나 더할지 상상이 되는가”라고 되물었다.

진도=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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