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 앞 교통안전, 해외선 어떻게]<1> 네덜란드 델프트市의 ‘보너르프’
네덜란드의 델프트 시내 람스트랏 거리에서 3월 29일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이곳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주거지역 도로 형태인 ‘보너르프’ 구역으로 차량속도를 제한해 모든 교통수단 이용자들이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다. 오른쪽 상단에 이곳이 보너르프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델프트=주애진 기자 jaj@donga.com
○ 집 앞에서만큼은 보행자에 우선권
보행자와 차량을 분리하는 기존의 도로 개념에서 벗어난 점은 보너르프의 가장 큰 특징이다. 보행자가 차량, 자전거, 이륜차 등 다양한 교통수단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한 것. 차선이나 연석이 없는 이유다. 동행한 한국교통연구원 이지선 박사는 “보너르프는 보행자와 차량의 통행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친교와 어린이들의 놀이공간까지 고려한 복합기능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운전자가 스스로 속도를 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이 보너르프의 핵심이다,
○ 시민이 앞장선 교통안전
보너르프는 델프트 시민들로부터 시작됐다. 1960년대 자동차가 증가하면서 이로 인한 사고나 사상자도 늘어났다. 특히 아이들의 안전을 우려한 시민들은 차량의 통행을 제한해서라도 ‘내 집 앞 안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택가 도로의 경계에 화분이나 꽃바구니가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자동차가 도로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운전자들도 주민들의 뜻을 존중했다.
시민들의 바람을 확인한 델프트 시청은 도시설계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보너르프를 처음 도입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좋아 시내 보너르프 구역이 하나둘 늘어갔다. 델프트 시의 성공을 본 다른 지방정부들도 동참하자 네덜란드 정부는 1976년 보너르프를 법제화하고 적극적으로 도입에 나섰다. 해당 구역에서 △보행자는 통행이나 놀이를 할 때 도로 전체를 이용할 수 있고 △차량은 보행속도(시속 15km)를 초과해 달릴 수 없고 △주차는 지정된 장소에서만 허용한다는 내용의 규정도 도로교통법에 명시했다. 2009년 기준으로 네덜란드의 주거지역 도로 7만2643km 가운데 893km(1.2%)가 보너르프다.
○ “시민 스스로 불편 감수하는 게 성공비결”
네덜란드 정부는 1990년대 새로운 도로관리정책을 수립했다. 전체 도로의 통일성 있는 관리를 위해 도로를 △시속 30km △시속 50km △시속 70km 이상 등 세 가지로 단순화한 것. 주거지역은 대부분 시속 30km 제한구역(Zone30)에 속한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보너르프보다 Zone30이 더 많다. 새 정책에 따라 기존의 보너르프를 Zone30으로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기존의 보너르프를 고집했다.
델프트 시청의 마이커 코네인 교통·공간활용 담당자는 “최대한 주민 요구를 수용하면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시민들도 불편을 감수하면서 안전을 지키려는 의지를 잃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델프트=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