指示국정의 허망 보여준 ‘救助제로’ 구름 위에선 현장 실상 보이지 않아 대통령이 읽은 보고서 어디에도 부실과 위험은 적혀 있지 않았을 것 ‘국정의 함정’ 눈치라도 채려면 스스로 격리된 밀실에서 나와야 그리고 계급 감당할 사람들 찾아야
배인준 주필
안전행정이 이토록 외화내빈이고, 해양경찰이 이토록 무능·비겁하며, 연안해운이 이토록 위험천만인 줄을 대통령은 몰랐을 수 있다. 안전행정부 해양경찰청 해양수산부, 그리고 이들 부처를 관장하는 청와대 비서실의 누구도 껍데기행정과 현장 무능과 국민생명의 불안을 대통령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황혼에서 새벽까지 읽는 깨알 같은 보고서의 어느 줄에도 그 부실과 비겁과 위험이 적혀 있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지도자는 속는 것도 리더십에 흠이 된다.
이제 대통령은 역대 정부의 적폐(積弊)를 탓하기 전에 자신이 국정의 현장 실상과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국정의 비현장성(非現場性) 비현실성이 어디서 시작되고 깊어지고 퍼졌는지 뿌리를 찾아야 한다.
인사권의 칼을 쥐고, 더구나 언제 레이저 광선을 쏠지 모르는 그런 대통령 앞에서 쓴소리, 귀에 거슬리는 말, 골치 아픈 얘기, 심각한 상황을 제대로 털어놓을 비서나 장관이 과연 있겠는가. 속된 말로 ‘뺀질이’들은 그토록 우직하게 자신의 목을 내밀지 않는다. 아랫사람들이 언제나 할 말을 할 수 있고, 할 말을 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 그런 환경을 대통령이 만들어야 뺀질이들도 조금쯤은 용감해질 것이다.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 아이디어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구호만큼이나 결과가 빈약하다. 이름 바꾸어 행정 처리 하는 데 든 국민 세금 수천억 원이 아까울 따름이다. 그런데도 경주 체육관 붕괴사고와 세월호 참사 이전에, 운이 좋아 별 탈이 없었던 것을, 안전행정을 잘해서 그런 양 대통령 앞에서 자랑한 이 정부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은 대통령의 신임을 업고 인천시장 후보가 되었다. 그는 지금이라도 국민 앞에 고개 숙여 ‘1년간 안전행정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사죄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한 책임의식을 보여줄 수 없는 사람들이 꾸며대는 감언(甘言)을 세상의 진실인 양 믿어서는 또 다른 사건사고가 터지지 않기를, 요행을 바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안보에서도, 국민안전에서도, 그리고 교육에서도, 경제에서도 진실로 국민을 지키고, 구하고, 경쟁력 있게 가르치고, 풍요롭게 만들라고 국민은 세금을 낸다. 그런 능력도 책임감도 없는 사람들로 청와대와 내각과 주요 처청(處廳)을 구성해 말의 성찬에 안도한다면 ‘세월호의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제복이 자랑스러운 나라’를 염원해왔지만, 지금 해양경찰청장 어깨 위에서 번쩍이는 태극무궁화 계급장은 정말 보기 싫다. 해양경찰청장의 ‘왕별’ 계급장 앞에서 묻게 된다. 국민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나라를 지탱하기 위해 1년 중 3개월 이상을 ‘세금 낼 돈 버느라’ 피땀을 흘려야 하는가.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