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됐다. 아직도 20여 명의 실종자가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채 차갑고 어두운 바닷속에 남아 있다. 진도 팽목항에서는 “빨리 와, 집에 가자” “제발 꺼내만 줘요, 안아볼 수 있게”라는 가족들의 외침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온 국민이 마치 열병에 걸린 듯했다. 180여만 명이 희생자 추모를 위해 경기 안산을 비롯해 전국의 분향소를 찾았다. 어른들 잘못으로 어린 생명들이 희생됐다며 비통해하고 분노했다. 모든 국민이 죄인의 심정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네 차례 사과했다. 국가를 개조하는 차원의 근본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안전 문제로 지난 한 달간 온 나라가 들썩거렸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여객선의 운항 관리와 감독이 강화됐으나 탑승객 확인, 화물 탑재, 장비 점검 등이 형식적으로 이뤄지거나 변칙이 여전하다. 응급구조를 위해 출동하는 소방차에 자동차도 사람도 길을 터주지 않고, 좁은 골목길의 불법 주차로 소방차의 진입도 어렵다. 지하상가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휴대용 비상손전등과 소화기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별도의 비상구가 없거나, 있어도 집기 등으로 막힌 곳이 많다. 광역버스는 입석 승객을 잔뜩 태운 채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안전 문제에 있어 실질적,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철저하게 후속조치를 취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대통령 지시 사항을 18개 항목으로 세분화해 담당 수석비서관에게 배분하고 정부 각 부처를 독려해 즉각 대응토록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 후에 무엇이 달라졌는지 도무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민방위기본법은 ‘소방방재청장은 매월 15일을 민방위의 날로 정해 민방위 훈련을 실시할 수 있으며, 필요할 경우에는 훈련 일정과 실시 여부를 조정하거나 추가해 실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5월에는 훈련 계획이 잡혀 있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국민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됐으면 민방위 훈련이라도 당장, 그리고 제대로 해보는 것이 제정신이 박힌 정부의 소임 아닌가.
292명의 희생자를 낸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를 겪고도 우리는 21년 후 똑같은 참사를 당했다. “대한민국은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은 쉽게 하면서도 정부도, 기업도, 국민도 실천할 의지와 행동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어제 세월호 사고 이후 처음으로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등이 출석한 가운데 정부의 현안 보고를 받았다. 정부의 초동 대응과 재난안전 시스템 문제에 대한 비판과 호통이 넘쳤다. 국회에서는 ‘세월호 상임위’도 줄줄이 예정돼 있고, 진상 규명과 사후 대책을 다룰 세월호 특별법도 논의된다. 국회가 나서 잘못을 찾아내고 확실한 대책을 마련한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에는 안전 관련법을 소홀하게 다루고 정부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국회의 책임도 작지 않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내 탓’이라고 반성하지 않으니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질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