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해 논설위원
배가 가라앉아 우리 아이들이 모두 없어졌다. 그런데도 세월호 회사 청해진해운은 진도 어디에도 안 보였다. 팽목항에서 시신을 확인하든,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가족을 돌보든, 범정부대책본부가 있는 진도군청에서 상황을 파악하든 어디에라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 이런 회사에 인천과 제주의 먼 뱃길, 수학여행길을 맡겼다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최소한의 기업윤리도 내동댕이치는 회사를 믿고 수학여행 보낸 부모만 탓할 것인가.
진도 팽목항에서, 실내체육관에서 나는 몇 번이나 놀랐는지 모른다. 기자인지, 실종자 가족인지, 공무원인지, 자원봉사자인지, 방문객인지, 누가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천막으로 가린 팽목항의 ‘신원확인소’(시신확인소를 이렇게 불렀다)는 아무리 급했다 해도 이렇게 누추하게 만들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멀쩡한 자식이 시체가 돼 들것에 실려 오는 것을 본 엄마 아빠의 비명을 듣지 않고는 이들의 아픔을 얘기하지 말라. 어제 집을 나선 아이가 번호 매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와 치아와 머리 얼굴 특징으로 자식을 찾아야 하는 모습을 상상이라도 해 봤는가. 어떤 엄마는 나이키, 아디다스 신발을 사주지 못해 아들을 찾지 못할까봐 애통해했다. 이토록 잔인할 수는 없다. 찢어지는 비명과 절규, 곡소리 속에, 이렇게 우리는 28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진도 실내체육관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감기’의 한 장면과 어찌나 흡사한지 섬뜩했다. 체육관 바닥에 가족들이 담요를 깔고 앉았고 한쪽에선 기자들이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 기자실과 가족대기실을 떼어놓는 최소한의 예의도, 상식도 공무원들에겐 없었다. 가족들은 24시간 기자들이 내려다보는 전깃불 환한 실내체육관에서 몸을 뒤척이는데 일부 공무원과 KBS 기자들은 편안한 진도국악원 숙소를 썼다니 이런 몰염치도 없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다이빙벨 투입하라고 선동할 때 시간만 잡아먹을 걸 뻔히 알면서도 이종인에게 다이빙벨 갖고 오라고 전화한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공복(公僕)이 맞나. 실종자 가족들에게 욕먹기 싫어 투입한 다이빙벨 때문에 며칠을 허탕 쳤는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왜 말하지 못하나. 다이빙벨 만능이라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이종인의 인터뷰를 두 차례나 한 ‘언론인’ 손석희 jtbc 사장은 어찌 사과 한마디 없나.
희생자 가족들이 청와대 가겠다고 몸부림쳤을 때 진도대교 앞에서 경찰은 왜 막아섰나. KBS로 몰려간 유가족들이 사장과 보도국장 나오라고 했을 때 이들은 어디 있었나. 청와대 앞에서 죽은 아이 영정을 들고 대통령 나오라며 밤을 샜을 때 청와대 비서들은 뭐 했나.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은 우리 이웃들이다. 누가 이들을 가로막는 바리케이드를 친 것인가.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은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방송만 믿고 선실에 남아 가족에게 카카오톡을 날렸다. 아이를 두 번 죽이고, 가족을 두 번 울린 이 못된 어른들을 어찌해야 하나. 유가족을 보듬지 못하는 나라 탓만 하고 있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