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집단자위권 공식추진 파문] 한국에 미칠 영향은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부처 관계자는 15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공식화 발표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한국에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출범 이래 꾸준히 군사력과 방위제도를 강화해온 일본은 이날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입장 발표를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의 군사활동에 대한 족쇄를 풀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한반도 안보와 우리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우리의 요청이 없는 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용인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는 총론적 원칙론이다. 각론에서 한국에 미칠 이해득실은 아직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관측이 많다.
한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민감해하는 이유는 6·25전쟁 중 일본 소해(掃海)함이 동해까지 들어와 기뢰 제거 등 군사활동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일본이 자위대의 해외파병 금지를 결의한 이유는 6·25에서 겪었던 경험의 영향이 컸다. 6·25 때 미국의 파병 요청을 거부하기 힘들었음을 상기한 일본은 1954년 자위대를 창설하면서 ‘해외파병 금지’를 공식 입장으로 채택해 해외 분쟁과 전쟁에 연루될 위험을 원천 봉쇄했다. 1960년 미일안보조약을 개정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방침도 결정했다.
그랬던 일본이 1991년 걸프전을 치르면서 궁지에 몰린 미국의 요청으로 소해함 파견을 재개했고 이후 집단적 자위권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미국과 일본이 1997년 9월 미일방위협력 지침에 ‘일본 주변 지역 유사사태에 미일 양국이 공동 대처한다’는 내용을 포함할 때부터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해 8월 한국은 미일 양국에 “한국의 주권과 한반도 평화·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은 한미, 한일 간 긴밀한 합의를 통해 추진돼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한반도 주변 수역에서 북한 선박의 임의검색, 비전투원 소개(疏開) 활동에는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 일본, 한국에 사전 충분한 설명 없어
일본은 2013년 1월 발간한 방위백서에서 중국의 대만 공격에 따른 분쟁에 일본이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양안(兩岸)사태에 일본 주둔 미국 7함대가 관여할 수밖에 없고 이때 일본도 중국과 충돌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본격 행사할 경우 한미, 미일 군사동맹으로 연결된 한국도 분쟁의 소용돌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일부 전문가는 중-일 영유권 분쟁대상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한반도 휴전선보다 무력충돌 가능성이 높은 곳으로 꼽기도 한다. 조세영 전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그동안 ‘투명인간’처럼 취급해온 일본의 군사 활동이 앞으로 한국의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일본은 15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사례로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을 포함해 한국이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동참하느냐를 놓고도 논란이 재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집단적 자위권 발표를 앞두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전 설명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의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참사관이 9일 방한해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 등 한국 당국자를 만났을 때도 15일로 예정된 발표 내용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다른 당국자는 “일본이 한국의 입장을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주변국에 미리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은 외교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숭호 shcho@donga.com·정성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