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정치부 차장
“밤늦게 퇴근해 곤히 자고 있는 초등학생 딸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자꾸 난다. 만감이 교차하면서 소주를 찾아 혼자 마시곤 했다.”(40대 중반 회사원)
“중간고사 기간 중학생 아들이 태평하게 TV를 보고 있더라. 예전 같으면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허허’ 하며 놔두게 되더라. 중고교생 학력이 크게 떨어진 이른바 ‘세월호 세대’가 생겨날 것 같다.(쓴웃음)”(40대 후반 대기업 임원)
전문직 50대 남성이 “돌볼 부모도 가족도 없는 대통령이 국가에 헌신할 정치인이라고 생각해 지지해왔다. 그 믿음을 버리기엔 아직 이르다”고 조용히 말했다. 386(1980년대 학번)들이 모인 그 자리에서는 메아리가 생기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리더십이다” “호통만 있지, 대책이 없다” “혹시 노무현(전 대통령)이면 다르지 않았을까”에 묻혀 버렸다.
심지어 “그러니까 군대를 다녀와야 해”라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 최근 대통령에 대해 여성 비하 욕설을 쏟아내는 북한 당국이 문득 떠올랐다. 술자리의 농담조 냉소와 북한의 저급한 비방이 겹쳐지는, 묘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대화의 끝은 허탈하다. 침몰하는 배를 뻔히 보면서 구조해내지 못하는 무능을 비난하면서도,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지 마라. 거리로 뛰쳐나가라’는 주장이 최선인가. 마음잡기는 힘든데, 마음 둘 곳이 없다. 1997,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는 금(金)이라도 모았다. 이 심리적 정신적 IMF 상황에서는 뭘 모아야 하나.
“내가 세월호 선장이라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못 그랬을 것 같다.” 몇몇 지인들이 자책하듯 한 말이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 선장입니다’라는 반성의 글들이 영향을 줬을까. 그 앞에서는 침묵했지만 내 가슴속 대꾸를 하려고 이 글을 쓴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 2010년 미국 연수 때 20대 초반의 앳된 여군에게 물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서 늘 ‘목숨을 걸 만한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그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목숨 걸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다.” 감명을 받았지만 나는 여태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다.
엊그제야 처음으로 중학생 아들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얘기했다. 함께 말하며 같이 다짐했다.
부형권 정치부 차장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