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욱(1974∼)
주사위의 내부에는
반듯한 모서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아, 이런 방에서 하녀로 일하며
정성스레 걸레질을 하는 것이 나의 꿈이었어.
물밖에 담을 수가 없고
나의 사념은 산성액에 녹아
기포가 되어 올라오고
모서리는
모서리는
함부로 망가지는 법이 없지.
방수가 되기도 하지.
진짜 복소수가 나올지도 모르니까
이야기를 잃은 사물들아, 그러니 근심을 접고
이리 와봐.
여기가 아주 좋아.
화자는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보는 중일 테다. 주사위는 여섯 면으로 이루어졌으니 모서리가 열두 개, 각각의 면에는 한 개에서 여섯 개까지 점이 찍혀 있다. 던져 올린 주사위가 떨어진 뒤 윗면에 보이는 숫자의 크기로 승패를 가르는 게 주사위놀이다. 어떤 숫자가 나올지 점칠 수 없고, 원하는 숫자가 나오게 할 묘수도 없다. 그저 우연에 맡길 뿐이다. 주사위라는 작은 육면체에서 우연의 무변세계를 보며 화자는 ‘주사위의 내부에는/반듯한 모서리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감탄한다.
우리는 이미 던져진 주사위일까. 거기서 거기인 몇 개 안 되는 숫자로 운명이 결정되는데, ‘모서리는//모서리는//함부로 망가지는 법이 없지’. 복불복(福不福)으로 저마다 담겨진 운명의 그릇대로 살 수밖에 없을까. 곡절 많은 삶을 사는 기구한 사람들은 사람의 운명을 주사위놀이하듯 한 신에게 따지고 싶을 테다. 아,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주사위 한 번 던진 것으로 결판 짓다니. 삼세판으로 합시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