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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세월호의 살인 “선내 대기 승객들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

입력 | 2014-05-16 03:00:00


세월호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승객을 버린 것으로 검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조타실에 있던 선장과 항해사 등은 배가 곧 전복될 것이 명확한 시점에 인근의 유조선은 직접 구조가 어렵고 해경 경비정 1척만 다가오는 것을 목격했다. 승객들은 선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승객들이 일제히 퇴선할 경우 구조 순위가 밀릴 것을 우려해 자기들이 우선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다.

검찰은 어제 이준석 선장, 강원식 1등 항해사, 김영호 2등 항해사, 박기호 기관장을 살인죄 등으로 기소하는 등 선박직 승무원 15명 전원을 기소했다. 이 선장 등 4명은 자신들의 행위로 죽음의 위험에 놓인 승객에 대한 구호 의무를 다하지 않음(부작위)으로써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최초 구조 신고부터 선원들이 배를 빠져나갈 때까지 51분의 시간이 있었다. 검찰은 이 시간 동안 최소 7차례 승객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이들은 승객에게 퇴선을 지시하는 최소한의 구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대검 관계자는 “선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승객이 사망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선박 사고에서 검찰의 살인죄 기소는 두 번째다. 1970년 326명이 희생된 남영호 침몰 사고에서 선장이 살인죄로 기소됐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엔 세 번의 파도를 맞고 순식간에 배가 뒤집어져 선장이 승객을 구조할 시간이 없었다. 법원은 “배가 화물 과적이 심하긴 하지만 선장 스스로 그 배에 탔는데 살인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사고 후 배가 80도 이상 기울기까지 1시간 20분의 시간이 있었다. 배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객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통신수단도 있었다. 일부는 근무복까지 갈아입었다. 상황이 다르니 법원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이 선장은 당시 판단력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강 항해사에게 회사와 연락을 취하도록 했고, 김 항해사에게는 객실에 연락해 선내 대기 안내방송을 하도록 지시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승객 퇴선 준비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듣지 않은 반면 박 기관장에게는 기관사들을 모아 퇴선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지금까지 수습된 사망자의 90% 이상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대피 준비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살릴 수도 있었던 승객은 죽든 말든 내버려두고 자기들 살 궁리만 했으니 살인 행위와 뭐가 다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