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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책]아기 하마는 왜 혼자 1600km를 떠돌았나

입력 | 2014-05-17 03:00:00

◇아기 하마 후베르타의 여행/시슬리 반 스트라텐 글/이경아 그림·유정화 옮김/224쪽·1만1000원·파랑새




192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세인트루시아 만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1931년 봄, 케이스카마 강까지 전체 여행 거리는 최소 1600km. 여행자는? 한 마리 어린 하마였다. 당시 신문들은 수시로 하마의 행적을 전했고 사람들은 하마의 여행을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하마에게는 후베르타라는 이름까지 생겼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습성을 지닌 하마가 어째서 혼자 방랑길에 나섰을까. 후베르타의 여정을 뼈대 삼아 남아공 출신 작가가 살을 붙였다.

후베르타가 속한 무리는 사탕수수밭에 갔다가 인간의 공격을 받아 절반이 넘게 죽고 만다. 세인트루이스 만으로 피신하던 중 갑작스러운 홍수에 휩쓸려 하마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후베르타 혼자 남는다. 철로 근처 덤불숲에 은신처를 마련한 후베르타는 이내 구경거리가 된다. ‘우람한 하마 구경! 왕복 단돈 6펜스!’라는 현수막을 붙인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덤불숲을 에워쌌다. 몸을 감춘 하마에게 겁쟁이라고 야유하면서 돌팔매질을 했다.

한 신문은 후베르타를 위한 시를 실었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이토록 외로운 하마를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일까. 하마가 바라는 소망은 오로지 인간의 연민인 것을. 산울타리 깎아 만든 땅에서 어슬렁거리고 텅 빈 창고에서 쉴 수만 있어도 좋을 것을.’

하마는 사람을 피해 주로 밤에 이동하며 며칠 동안 종적을 감췄다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불쑥 나타났다. 어느 시골 마을의 다리 한복판, 철도 선로 위, 외곽의 골프장, 도시의 약국 앞…. 후베르타에게는 ‘남아프리카의 애완동물’, ‘연방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자’ 같은 별명이 붙었다.

그러던 어느 날 네 살배기 하마 후베르타가 총에 맞아 죽은 채 발견됐다. 무슨 동물인지도 모르고 사냥 본능에 총을 쏘아버린 네 남자의 소행이었다. 후베르타를 응원했던 소녀 발레리는 말한다. “후베르타는 자연을 의미했어요. 후베르타는 지금 인간에게 살해당하는 모든 야생 동물을 상징하는 존재였단 말이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여전히 남은 숙제다. 후베르타는 박제돼 마지막 숨을 거둔 곳 인근 킹윌리엄스타운 아마톨 박물관에 살고 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