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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안전한 대한민국 개조, 대통령담화는 ‘첫발’일 뿐이다

입력 | 2014-05-20 03:00:00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34일째인 어제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여섯 번째 사과를 하면서 눈물을 비쳤다. 대(對)국민 담화에서 박대통령은 해양경찰청 해체와 국가안전처 신설 등 정부 조직 개편, 관(官)피아 척결 등을 위한 제도 개선, 청해진해운 같은 부도덕한 기업에 대한 징벌 강화, 진상 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과 특별법 제정 등 대책을 내놓았다. 유가족 등이 희망한 희생자 추모비 건립과 국민안전의 날(4월 16일) 지정도 제안했다.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과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수많은 주문을 박 대통령은 거의 다 수용해 ‘백화점식 해법’과 함께 해경 해체라는 충격요법까지 내놨다.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우리 국민은 더이상 안전을 도외시한 채 앞만 보고 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안전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대장정의 첫걸음에 불과하다. 이제 우선순위를 따져 차근차근 고쳐 나가는 데 온 국민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대책은 일단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것이긴 하지만 정부 조직 개편과 제도 개선에 치중한 측면이 두드러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구조와 사후 대응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해경을 해체하고 안전행정부와 해양수산부를 대폭 축소한 것은 응분의 책임을 묻는 동시에 다른 정부 조직에 반면교사의 경각심을 준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가 있다. 국가안전처도 2001년 9·11테러 이후 미국이 국토안보부를 만든 것처럼 정부의 각종 안전 관련 업무를 통합하고, 육상이든 해상이든 대처 가능한 최고의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설치할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재난 대처 기구와 컨트롤타워, 매뉴얼 같은 게 없어 대형 참사가 빚어진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하드웨어가 아니라 그 속의 사람이고 소프트웨어인데 대통령의 담화는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피아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도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언젠가는 손을 대야 할 분야다. 하지만 지나치게 제도 개선에 역점을 둔 데다, 개혁의 칼자루를 여전히 관료에게 맡겨 대통령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변화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지금처럼 청와대가 부처 과장급 인사까지 좌지우지하고 장관은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받아 적어 아랫사람에게 전달하는 상명하달식 소통 방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의 소프트웨어 개조는 전문성과 공공성을 가진 인물을 중용하는 인사(人事)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공직자들은 벌써부터 자기반성이나 공직사회의 변화를 다짐하기보다 자기 자리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풍토를 바꾸려면 대대적인 물갈이로 판을 뒤집어야 한다. 지난 1년간의 국정 운영과 세월호 참사를 놓고 볼 때 지금의 내각 구성과 청와대 참모진으로는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정부를 바꾸려면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바뀌어야 한다. 어제 대국민 담화에는 “나부터 바꾸겠다”는 박 대통령의 결정적 한마디가 들어 있지 않았다. 대통령 자신의 국정 운영방식변화와 인적 쇄신이 빠져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어제 담화가 국민을 대신한 기자들의 질문 한 번 받지 않고 대책 발표로 끝난 점도 아쉽다. 이래서야 세월호 참사로 대통령도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 한다는 비판도 새겨들어야 한다. 미국은 9·11테러 이후 여야 정당이 함께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만들어 2004년 7월 최종 보고서를 낼 때까지 무려 2년 10개월이 걸렸다. 박 대통령이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 설치와 특검 도입 등 특별법 제정을 제안한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좀 더 심도 있는 대책을 마련하려면 여야, 전문가, 민간, 공무원 등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심하고 지혜를 모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고뇌한 흔적이 보인다’라면서도 일 처리의 순서가 잘못됐고, 청와대와 내각 전반의 책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참사에 대한 진단과 처방도 잘못됐다는 등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야당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김한길 공동대표가 어제 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을 때 국민은 안전 문제가 여야를 떠나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있다는 신뢰를 갖게 될 것이다. 정부 조직 개편이든,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관련법 심의든 정부안이 제출되는 대로 국회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하고 더 좋은 방안을 찾으면 된다. 세월호 참사 같은 국민적 재난에는 야당도 책임감을 갖고 정부 여당과 함께 대책 마련에 힘을 보태는 것이 수권(受權) 정당의 모습이다.

대한민국이 경제뿐만 아니라 안전 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이번 참사를 계기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언제까지 비통해하고, 손가락질하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질곡에서 헤맬 수는 없다. 국가의 주인은 대통령도 정부도 국회도 여야도 아닌 바로 국민이다. 국가를 개조하려면 그 주인인 국민부터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각오로 의식과 행동을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