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지켜달라”는 염원이죠
경복궁 근정전은 우리의 옛 건축물 가운데 가장 당당하고 장엄하다.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도록 치장을 최대한 절제했다.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1개 층이다. 1867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함께 세워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동아일보DB
오바마 대통령이 경복궁 근정전을 찾은 것은 근정전이 가장 아름답고 가치가 높은 옛 건축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궁궐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건물을 정전(正殿)이라고 부릅니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仁政殿)이 바로 정전이지요. 이 두 건물을 비교해보면 경복궁 답사나 창덕궁 답사를 갔을 때, 훨씬 더 흥미롭고 이해도 잘될 겁니다.
근정전 주변 월대의 난간에 조각해놓은 해태상. 근정전을 잘 지켜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왜 근정전 월대 난간에 동물을 조각해놓은 걸까요? 근정전과 경복궁을 지켜달라는 염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조선 왕조의 안녕과 번영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지요.
근정전 건물 내부는 웅장하고 장엄합니다. 밖에서 보면 2층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층이 나눠지지 않고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근정전 한가운데엔 임금이 앉는 용상(龍床)이 있고 그 주변과 천장을 화려하게 장식해 놓았습니다. 용상 바로 뒤에는 나무로 만든 곡병(曲屛)이 있고 그 뒤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놓여 있어요. 일월오봉병은 임금의 자리 뒤에 세워놓는 병풍입니다. 이름 그대로 해(日)와 달(月), 다섯 개의 산봉우리(五峯)를 그린 병풍을 말하지요. 일월오악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일월은 음양 또는 왕과 왕비를 상징합니다.
천장에는 여의주를 문 채 힘차게 꿈틀거리고 있는 용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두 마리의 용은 근엄하고 역동적입니다. 여기서 용은 왕을 상징하지요.
창덕궁 인정전(국보 225호)은 1804년에 세워졌습니다. 경복궁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왕실과 국가의 공식적인 의전 행사를 거행하던 곳이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1910년 한일병합 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곳이기도 합니다. 인정전은 ‘어진 정치를 펼치는 곳’이란 뜻이지요.
인정전의 특징이자 경복궁 근정전과의 차이는 서양식 샹들리에와 커튼이 걸려 있고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조선의 마지막 왕(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 이듬해인 1908년 인정전 내부를 개조하면서 근대식 서양풍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실내의 바닥도 전돌에서 마루로 바꾸고 전기도 들여와 전구를 매달았습니다. 우리나라 궁궐의 정전에 처음으로 서양식 인테리어가 도입된 셈이지요.
인정전의 지붕 맨 위쪽 용마루에는 오얏꽃(이화·李花) 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오얏꽃은 대한제국(1897∼1910)의 상징 무늬였어요. 인정전에는 이렇게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답니다.
창덕궁에 붙어 있는 창경궁의 정전도 잠깐 살펴볼까요? 국보 226호 명정전(明政殿·국보 226호)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인 1616년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내부 공간은 기본적으로 근정전과 다를 바 없지만 규모가 작고 소박합니다. 하지만 궁궐의 핵심 건물 가운데에선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명정전도 가치 있는 옛 건물이랍니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