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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동일본대지진… 재난때 꽃핀 우정, 한일관계 버팀목

입력 | 2014-05-21 03:00:00

[한-일 애증의 현장을 찾아/2부: 교류와 이해]<下>한일, 힘들때 서로 돕는 친구




세월호 추모 종이학 꾸러미 도쿄의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제단 왼쪽에 걸린 2000마리의 종이학 꾸러미.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의 온정을 기억하는 일본의 한 할머니가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접어 보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16일 오후 일본 도쿄(東京)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로비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 한일 양국 참배객들이 분향하는 제단 왼쪽에 실에 꿴 종이학 2000마리가 걸려 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일본의 한 할머니가 며칠 동안 접어 보낸 것이다.

할머니는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때 1만814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된 미야기(宮城) 현 출신이다. 전화를 걸자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들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2007년 도쿄의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고(故) 이수현 씨 얘기도 잊지 않고 꺼냈다. 그러면서 그는 “(종이학을 보낸 데 대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신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여전하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애도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특히 3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인이 보여준 온정은 이들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다. 양국 국민 간 마음의 교류는 한일 관계의 파국을 막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대지진 피해 주민들“한국인들에게 감사” 일본 이와테 현 야마다 정의 한 가설주택단지 주민들이 2011년 민단이 무료급식을 하던 현장 사진을 보며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한 할머니는 “한국산 김을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며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이와테=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어려울 때 손 내미는 친구

“주먹밥 하나로 며칠을 버텨야 할지 앞이 캄캄했어요.” “귤 한 개로 이틀을 버텼죠. 그해 3월 날씨는 또 왜 그리 추운지….”

지난달 14일 일본 이와테(巖手) 현 야마다(山田) 정의 한 가설주택단지.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노인들에게 피난소 생활을 묻자 모두 몸서리를 쳤다.

강영만 민단 이와테현지방본부 사무국장은 지진 당시 연락이 끊긴 교민들을 찾아 피해지 곳곳을 뒤지고 다녔다. 그러던 중 한 피난소에서 일본인 아주머니에게 주먹밥을 건네자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혼자 먹을 수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교민들만 챙길 상황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강 국장 등 민단 관계자들은 지진 발생 보름 뒤인 3월 27일 피난민 400명이 모인 야마다기타초등학교에서 무료급식에 나섰다. 추운 날씨였던 만큼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한국 음식이 제격이라는 생각이었다. 돼지고기와 야채를 썰어 넣은 국과 계란찜 400인분을 준비했다. 아키타(秋田) 현 민단 부인회에서는 육개장 100인분을 준비해 왔다.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 속에 피난민들은 모처럼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민단의 무료급식 활동은 6월까지 각지에서 수십 차례 이어졌다. 중앙본부와 다른 지역본부도 앞다퉈 지원에 나섰다. 나가노(長野) 현 한국청년상공회에서는 지역 특산 면음식(소바) 1000인분을 보내오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구호물자가 쏟아졌다.

방사능 공포로 주민들의 탈출이 이어지던 후쿠시마(福島) 현에서 민단은 사선을 뛰어넘으며 봉사활동을 폈다. 전상문 민단 후쿠시마현지방본부 사무국장은 “남들은 도망가는데 우리가 무료급식을 실시하자 눈물을 보이는 노인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3년이 지나 한국에서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아사히신문의 하코다 데쓰야(箱田哲也) 논설위원은 지난달 6일자 칼럼에서 “동일본 대지진 직후 서울 지국장이었던 나에게 한국인의 온정이 쇄도했다”며 “지금의 한국에 이웃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자문하고 있다”고 적었다.

칼럼이 나가자 신문사에는 격려의 메시지가 쇄도했다. 요코하마(橫濱) 시에 사는 니시오카 마사코(西岡政子·68) 씨는 적지만 한국에 전해 달라며 5000엔(약 5만 원)의 성금을 보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혐한 분위기가 있어 아사히신문의 칼럼에 일본 사회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걱정했는데 응원이 많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였다”고 말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도 위로 엽서가 쏟아지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일본의 각급 학교 단위로 ‘힘내라’는 메시지가 특히 많다”고 전했다. 도쿄의 민관합동 분향소에는 일본의 주요 정치인들을 포함해 19일까지 1487명이 다녀갔다.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는 “한일 양국 모두 상대에 비판적인 마음과 비극을 공유하려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며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는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반영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 시들지 않는 풀뿌리 교류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은 274만7750명. 사상 최고치였던 2012년의 351만8792명에 비해 22% 줄었지만 한류 붐이 폭발하기 직전인 2008년의 237만8102명에 비하면 여전히 37만 명 많다.

반대로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은 엔화 약세에 힘입어 지난해 245만6165명으로 전년의 204만2775명보다 20% 늘었다. 양국 왕래 인구를 합하면 여전히 500만 명이 넘는다. 강중석 한국관광공사 도쿄지사장은 “양국 간 풀뿌리 교류가 그만큼 정착됐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1968년 울산 시와 야마구치(山口) 현 하기(萩) 시의 자매교류로 처음 시작된 양국 자치단체 간 교류는 갈수록 늘고 있다. 주일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20일 현재 교류협력 사례는 자매교류(지방의회의 의결까지 거친 교류) 98건, 우호교류 94건 등 총 192건이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기 직전인 2012년 6월의 172건에 비해 20건 많다. 교류협력을 추진 중인 사례도 10건이다.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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