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힘 모아 대본-소품 준비… 고사리손들이 올리는 인형극 믿음-화합의 공동체 기억 쌓고 관객들에겐 위안과 평화 선물 ‘세월호’ 상처 입은 우리 사회… 인형극처럼 공동의 기억 만들어 함께 나눔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지은 사회평론가
지금은 1년에 한 번은 정식 공연을 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이 인형극단의 출발은 소박했다. 자신의 마음을 잘 털어놓지 못하는 공부방 아이들이 친구들 앞에서 좀 더 쉽게 자신을 표현하는 놀이로 시작했던 것. 인형극의 매력에 빠진 아이들은 공부방의 이모, 삼촌들과 힘을 합쳐 인형극단을 만들기에 이른다.
이 극단이 춘천 인형극 경연대회에서 특별상과 대상이라는 큰 상을 연이어 수상한 것은 뉴스 축에도 못 낀다. 이들에게는 자신들이 만든 인형극을 보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위로받고, 다툼과 폭력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작은 평화를 나누는 순간이 훨씬 중요하니까 말이다.
이들은 얼마 전 그림책 ‘6번길을 지켜라 뚝딱’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아이들이 함께 노래하고 놀고 공부하던 오래되고 작은 집 1층에서 만들어졌다. 인형, 배경, 소품, 사진까지 모두 공부방 식구들의 작품이다. 힘없는 사람들이 삶터를 빼앗길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을 돕는 도깨비들의 이야기는 곧 만석동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인형들은 4명의 20대로 이루어진 창작집단 ‘도르리’가 만들었다. 넷은 어렸을 때 작은 학교에서 만나 난타, 풍물, 노래를 배우며 자랐고 아이들과 인형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려왔다. 글을 쓴 김중미 이모와 사진을 찍은 유동훈 삼촌에게서 배우며 자란 제자들이 선생님들과 함께 책을 낼 정도로 성장한 셈이다. 30쪽이 채 되지 않는 얇은 그림책이지만 담겨 있는 세월의 무게는 묵직하다.
4월, 세월호 참사가 있기 직전 관람한 그들의 무대 ‘길·동무·꿈’은 그래서 더 뭉클했다. 정성껏 만든 집게 인형을 품에 안고 “난 약하고 여린 내 모습 그대로가 좋아” 노래를 부르는 꼬마와 “돈이 좀 없어도, 여기 있으면 외롭지 않아요. 함께 지낼 수 있어서 좋아요”라는 아이의 고백 앞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인형극은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나와 한 몸이 된 짝을 믿고, 함께 연기하는 다른 사람을 믿고 가는 거다”라는 한 아이의 말처럼 앞으로도 이 작고 가난한 공부방은 인형극을 올리고 그림책을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전대미문의 참사가 모두의 마음에 커다란 생채기를 내고 큰 충격을 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작은 공부방의 인형극처럼 공동의 기억을 만들어 함께 나누는 건 아닐까.
상처에서 돋는 새 살을 쓰다듬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지, 서로의 상처를 덧내며 뒷걸음칠지 선택은 모두의 몫이다.
정지은 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