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고교야구에서도 에이스 겸 4번 타자가 즐비했다. 군산상고 조계현(LG 2군 감독), 선린상고 박노준(우석대 교수), 세광고 송진우(한화 코치), 광주진흥고 이대진(KIA 코치) 등은 투수면 투수, 타자면 타자 못하는 게 없었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진출한 류현진과 SK 에이스 김광현, LG 마무리 투수 봉중근도 투타 재능을 겸비했다. 특히 봉중근은 1996년과 1997년 황금사자기 대회에서 각각 4승씩을 거두며 신일고의 2연패를 이끌었다. 1997년에는 타자로 타율 0.571을 기록했다. 김성한 전 한화 수석코치는 1982년 해태에서 투수로 10승, 타자로 13홈런, 10도루를 기록했다.
▷최근 고교야구에선 이런 팔방미인을 보기 힘들어졌다. 2004년 도입된 나무배트와 지명타자 제도의 영향이 크다. 이후부터 투수와 타자 중 한 우물만 파는 선수들이 많아졌다. 좋게 말하면 전문화이고 나쁘게 말하면 반쪽 선수다. 심지어 중학생 때부터 전문화의 길을 택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21일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만난 양 팀 에이스(서울고 최원태-용마고 김민우)는 투타를 겸비한 선수들이라 더욱 반갑다.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의 4번 타자 이대호, ‘아시아의 거포’ 삼성 이승엽, NC의 차세대 슈퍼스타 나성범 등을 보면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효과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아마추어 시절 팀의 에이스였다. 프로 입단도 투수로 했다. 그렇지만 팀 사정과 부상 등의 이유로 타자로 전향했고, 타자로 대성공을 거뒀다. 투타를 겸업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선수로 머물 수도 있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방망이 한 번 안 잡았던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가끔 안타라도 하나씩 치는 것도 고교 시절 타격 훈련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다시 오타니 얘기로 돌아가자. 오타니는 고교 시절 최고 시속 160km의 강속구를 던졌다. 고교 3년간 타자로서는 56개의 홈런을 친 장타자였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오타니를 설득하기 위해 니혼햄은 여러 조건을 내걸었는데 그중 하나가 ‘투타 겸업’이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은 아직도 오타니를 놓친 것을 아쉬워한다. 투수로서든 타자로서든 최우선 영입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면 계약금은 얼마나 됐을까. 한 스카우트는 “1000만 달러(약 103억 원)도 아깝지 않은 선수였다”고 했다. 크게 성공하고 싶거나 최소한의 보험을 들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 당장 방망이를 잡아라.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