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 단절 위해 행정고시 단계적 폐지해야▼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우리는 그동안 잘나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오만해져 기본적인 원칙도 무시하고 안주한 것은 아닐까. 세월호 사태 이후에도 발생하고 있는 안전사고 등을 보면서 우리 사회 어느 구석이 이미 오래전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과 의구심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일 박 대통령의 강도 높은 공직사회에 대한 처방, 특히 고위직 관료를 행정고시라는 5급 공채와 민간 출신을 각각 50%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에 기본적으로 대찬성이다.
지금의 공무원 부패와 무능의 형태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에는 현장 집행을 하는 일선 공무원들이나 고위직이나 이권 개입을 통한 부패가 심했다면 지금은 고위직들이나 하위직을 막론하고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복지부동의 철밥통 자체가 부패와 무능이다. 특히 행정고시 출신의 전직 고위직들은 자신들의 학연, 지연, 혈연 등의 ‘연줄’로 퇴직 이후에도 끊임없이 관련 이익단체들로 자리를 옮겨가며 연명하고 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가 ‘트러스트(신뢰)’라는 저서에서 한국과 중국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로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이 신뢰라는 규범으로써 움직이지 않고 한국은 ‘연고주의’, 중국은 ‘관시(關係·관계)’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귀에 거슬리고 거친 분석이지만 일면 타당하다. 그가 지적한 신뢰가 낮은 사회인 한국, 중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그리고 장기불황에 빠져 있는 일본까지 가장 인기 있는 직종이 공무원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대부분의 법률은 행정부 관료, 즉 행정고시 출신의 고위직 공무원들이 국회에 제출하는 것이며 심의·의결하는 국회의원 상당수 역시 행정고시 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더군다나 이 고위직들이 일부 대학과 지역 출신으로 편중되어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한국의 관료는 이번의 세월호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관련 업계와 매우 밀착되어 있다. 정책은 현직 고위직이 만들고 집행은 퇴직한 고위직 공무원이 낙하산으로 내려간 조직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또한 국회에서 행정고시 출신 의원들이 백업을 해주고 있으니 그야말로 관계-업계-국회 간의 ‘철의 삼각동맹’이다.
이제는 법규와 집행 권한에 이어 예산 권한까지 무한정으로 누리는 행정고시 출신의 철밥통 공무원을 우리의 젊은 엘리트들이 그리워하지 않도록 바꾸어야 한다. 암기 위주의 지식 시험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식에 대한 검증을 하기 위해 문제은행식으로 시험제도를 바꾸어야 하며 창의력을 판별할 수 있도록 심층면접과 프로젝트 방식으로 선발하여야 한다. 또한, 철저하게 지역대학에 할당제를 실시하여야 하며 고위직 공무원들의 권한을 최소한으로 축소시켜 민간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여야 한다.
그러나 행정고시 폐지가 단순히 지금까지 준비하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체 시장으로서도 규모가 크므로 매년 선발 인원수를 조금씩 줄여 완전 폐지까지는 5년 이상을 두고 신중하게 접근하여야 한다. 그래야 여론을 등에 업고 관피아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
▼고시 없애면 서민자녀들 공직 진출 힘들어져▼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
행정고시 폐지론의 근거는 고시 출신 고위공무원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선후배 간에 서로 끌어주고, 퇴직 후에는 낙하산으로 산하 기관이나 단체의 요직을 차지해 이권에 개입하거나 비리를 묵인 또는 방조하는 고질적인 적폐를 양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행정고시를 폐지한다고 해서 ‘관료 마피아’가 사라질지는 의문이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경우에는 퇴직 공무원의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기 위해 부처의 개별적 알선을 금지한다. 재취업은 내각부에 신설한 ‘국가공무원 인재뱅크’를 통해 일원 관리하며 신설된 중앙감시위원회가 개별 심사 및 승인을 하고 있다.
한 나라의 공무원 충원 방식은 그 나라 공직제도의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공개채용시험이 기본적인 공무원 충원 방식으로 자리 잡았고, 행정고시는 고위공무원 채용을 위한 시험제도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행정고시는 서민 출신의 젊은이들에게 입신양명의 꿈을 키워주는 ‘신분 사다리’ 역할을 하였다.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직한 공무원들은 국가 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이는 공직사회의 사기와 자긍심을 고취시켜 주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는 광범위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경제성장은 비약적이었고, 사회의 가치관도 다양해졌다. 행정의 내용도 복잡해지고 양적으로 확대되었으며, 전문화의 수준이 높아져서 공직도 전문 지식과 기술을 보유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민간의 유능한 전문가를 유치하여 공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행정고시 외에 공무원 충원 경로를 다양화하였다. 우수한 전문 인력이나 유경험자를 채용하는 경력경쟁채용제도(특별채용제도)와 ‘전문성이 특히 요구되거나 효율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 공직 내외부의 경쟁’을 통해 적격자를 뽑는 개방형 직위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효율적인 정책 수립 및 관리를 위해 필요한 직위에 공직 내 공무원들의 경쟁을 통해 적격자를 선발하는 공모직위제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다양한 개방형 충원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우수한 민간 경력자를 공직에 유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민간 부문에 비해 낮은 보수, 공직 적응의 문제, 신분 불안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만약 행정고시가 폐지되고 민간 경력자 특채 방식으로 선발하게 되면 학위나 자격증과 같은 소위 ‘스펙’이 화려한 사람들만이 공직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부유층 자녀들은 석·박사 학위나 해외 유학 등의 스펙을 쌓기가 쉽지만 서민 자녀들은 이런 스펙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 이렇게 되면 공직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점유물’이 될 가능성이 생긴다.
또한 현재와 같은 계급제 중심의 공직분류체제하에서는 각 직위에 필요한 자격 요건과 선발 기준 및 절차를 단시일 안에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채용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못하면 몇 년 전 발생한 ‘장관 딸 특채’와 같이 정실이 개입되어 자칫 ‘현대판 음서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에 비해 고시제도는 국민에게 기회 균등을 보장하고,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만일 전문가 채용을 위해 학위, 자격증, 경력과 같은 응시요건에 제한을 두게 되면 국민의 공무담임권과 평등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
물론 고시제도가 최선은 아니다. 현행 고시제도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고시제도의 개편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에도 오랜 기간 연구를 통해 기존의 Ⅰ·Ⅱ·Ⅲ종 공무원 시험제도를 종합직·일반직·전문직 시험으로 재편하였다.
권경득 선문대 행정학과 교수
※ 필자는 미국 애크런대 행정학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인사행정학회장, 공무원 채용시험 선진화 추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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