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9월부터 몇달 행적 묘연… 일각서 폴 매카트니 사망설 제기
“멤버들이 비밀리에 닮은꼴 찾아… 렛 잇 비 등 음반작업에 참여시켜”
사망설 전후시점 사진 본 성형의, “같은 인물… 단, 수술 많이 받은듯”
2013년의 폴 매카트니.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비틀마니아(비틀스의 광적인 팬) 중 소수는 폴 매카트니가 1966년 9월부터 1967년 1월 사이에 숨졌다고 믿는다. 블로그에 ‘제임스 폴 매카트니(1942∼1966)’라는 문구를 걸어놓은 이도 있다. 매카트니 사망설은 비틀스가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음모론이다.
음모론자들은 1966년 9월부터 몇 달간 유독 매카트니의 행적만 묘연했던 데 주목한다. 그들이 추정하는 매카트니의 사망시점과 장소는 1966년 9월부터 1967년 1월까지, 미국 영국 프랑스로 다양하지만 사인은 공통적으로 교통사고다. 비틀스 명곡 ‘드라이브 마이 카’(1965년) 때문일까.
28일로 예정됐던 폴 매카트니의 첫 내한공연이 21일 건강문제로 취소됐다. ‘매카트니 또는 거짓 매카트니’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도 날아갔다. 》
‘폴 매카트니(1942∼1966)’
1965년 이전, 비틀스 초기의 폴 매카트니. 프리다 켈리 제공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둘째 아들이자 실력파 기타리스트인 신윤철 씨(45)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사온 비틀스의 ‘서전트 페퍼스 론리 하츠 클럽 밴드’ 앨범을 처음 들은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음반을 듣다 “아버지, 근데 이건 누구 목소리죠?” 하고 물었다. 존 레넌도, 조지 해리슨도, 링고 스타도, 매카트니마저도 아닌 제5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매카트니 사망설을 파고든 건 나중 일이었다. 신 씨는 “음모론의 증거 중 상당수는 타당성 있어 보이기도 한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라고 했다.
단서 찾기
단서는 널려 있었다. ‘스트로베리 필즈 포에버’(1967년)의 말미에 존 레넌이 하는 횡설수설을 거꾸로 돌리자 ‘내가 폴을 묻었다(I buried Paul)’라는 메시지가 들렸다. 매카트니는 후에 이것이 ‘크랜베리 소스’였다고 했다. ‘레볼루션 넘버 나인’(1968년)의 중얼거림은 거꾸로 하자 ‘날 흥분시켜줘, 죽은 사람(Turn me on, dead man)’이 됐다. 비틀스가 연주를 녹음한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는 기술을 선구적으로 구사했던 것이 오히려 매카트니에겐 화근이 된 셈이다. 앨범 ‘애비 로드’(1969년)의 표지에서 매카트니만 맨발로 건널목을 건너고 있는 것 역시 ‘죽은 자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건널목 뒤에 주차된 차량의 번호는 하필 ‘28IF’였다. 이는 ‘만약(If) 매카트니가 살아있었다면 올해 스물여덟(28)’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매카트니는 죽었을까.
출판사 안나푸르나의 김영훈 대표는 “터무니없다”고 했다. 그는 ‘폴 매카트니―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를 포함해 5권의 비틀스 관련 도서를 기획했다. “목소리와 창법이 세월에 따라 바뀌지 않는 게 더 이상합니다. 조성모가 ‘히든싱어’에서 1등 못한 것과 비슷한 이치죠.” 그는 “해체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골이 깊어진 비틀스 멤버들이 이를 밝히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폴 매카트니가 진짜일 가능성 100%”라고 못 박았다. “비틀스 시절과 솔로 시절의 매카트니의 작곡 능력은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죠. 닮았다고 재능까지 똑같을 순 없습니다. 차라리 커트 코베인(1967∼1994)이 살아있다고 하세요!”
비틀스 앨범 ‘애비 로드’의 표지. 멤버 중 폴 매카트니(왼쪽에서 두 번째)만 맨발이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고 있다. 왼손잡이로 유명한 그는 여기서 담배를 오른손에 들고 있다.
안검하수(눈꺼풀 처짐) 수술도 의심됐다. 양 원장은 “매카트니는 원래 처짐이 심해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할 때 발생하는 눈썹의 상방(上方) 이동이 있다. 이것이 교정된 사진도 간혹 있다”고 했다. 그는 “1960년대에도 이런 성형수술이 존재했다. 당시 수술에 대한 일반인의 인지도가 적었던 탓에 외모 변화가 음모론으로 번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눈꺼풀 수술이나 턱과 광대뼈의 보형물로 인해 눈꼬리의 위치, 턱의 길이가 달라질 수 있으며, 귀의 모양은 늘어진 피부와 근육을 당겨주는 안면 거상술을 잘못 받을 경우에 변화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양 원장은 “사진 판독만으론 한계가 있다. 매카트니와 매우 닮은 다른 사람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배명진 교수가 이끄는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는 본보 의뢰로 매카트니가 1965년과 1975년 공연에서 각각 부른 ‘예스터데이’ 가창과 여러 인터뷰의 음성을 비교했다. 배 교수는 “소리 스펙트럼에 의한 성문(聲紋) 분석 결과 90% 이상의 일치도를 보였다. 동일인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해외 인터넷에서 ‘Paul is Dead(폴은 죽었다)’나 ‘Faul McCartney(거짓 매카트니)’를 검색하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Faul’은 ‘Paul’의 ‘P’를 ‘Fake(가짜의)’ ‘False(거짓)’의 ‘F’로 바꿔 조롱하는 조어(造語)다. 복합문화공간 CJ아지트를 운영하는 버튼매니지먼트 김철희 대표는 “사실 여부를 떠나 음모론을 접하고 난 뒤 비틀스와 매카트니의 음악을 듣는 일이 퍼즐 풀이처럼 재밌어졌다”고 했다. 매카트니는 음모론을 패러디해 1993년 라이브 앨범 제목을 ‘폴은 살아 있다(Paul is Live)’로 지었다. 우리는 지금껏 거짓 매카트니의 노래를 들어왔을까.
당신은 증명할 수 있는가. 당신이 왜 당신인지.
▼ “독특한 목소리-행동 그대로… 죽었다니, 말도 안돼” ▼
비틀스 이후 매카트니 집중조명한 책 보니
‘폴 매카트니-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 표지. 안나푸르나 제공
존 레넌과 함께 비틀스의 거의 모든 곡을 만들었다. 귀엽고 잘생긴 외모와 특유의 재치로 비틀스 팬덤을 확장하는 역할도 했다. ‘이매진’이 대변하듯 평화와 반전의 메시지를 설파하며 사회 저항적 면모를 드러냈던 레넌에 비해 매카트니는 달콤한 멜로디를 잘 쓰는 낙천적인 귀염둥이 정도로 치부됐기에 좀처럼 깊이로 탐구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간 비틀스와 존 레넌은 물론 조지 해리슨을 조명한 책까지 나왔지만 국내에 폴 매카트니를 따로 다룬 책은 없었다.
결국 불발된 매카트니의 첫 내한에 맞춰 최근 나온 ‘폴 매카트니―비틀즈 이후, 홀로 써내려간 신화’(톰 도일 지음 김두완 이채령 옮김·안나푸르나·356쪽·1만9000원)는 비틀스 이후 매카트니의 행보를 집중 조명한다. ‘예스터데이’ ‘렛 잇 비’ ‘헤이 주드’를 쓴 매카트니 말고 ‘어나더 데이’ ‘리브 앤드 렛 다이’ ‘마이 러브’와 ‘멀 오브 킨타이어’를 만든 매카트니 말이다.
책은 매카트니 사망설을 해프닝으로 규정한다. 30쪽부터 37쪽까지, 전체의 50분의 1 분량만 사망설에 할애했다. 음악 작가로서 2006년 이후 여러 차례 매카트니를 인터뷰한 저자는 “매카트니의 독특한 목소리와 특징, 행동거지 등을 고려하면 그가 죽었다는 소문은 어불성설”이라고 단언한다. 매카트니는 이 상황에 대해 화를 내기보다는 재밌어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책이 주로 다루는 것은 비틀스 멤버 사이에 불화가 커지고 해체를 앞둔 1969년부터 존 레넌의 사망(1980년) 직후인 1981년 사이 매카트니의 행적이다. 음모론의 관점에서 보면 거짓 매카트니가 정체성 위기와 비틀스 후광을 극복하고 솔로 가수로 세상 속에 자리를 잡는 여정인 셈이다. 매카트니가 비틀스 해체 후 당시 부인 린다 매카트니(1941∼1998)와 함께 멤버를 모아 만든 밴드 윙스의 활동 시기(1971∼1981)와 겹친다. 비틀스 멤버들 간의 지루한 법적 공방과 윙스와의 음악 여정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90cm 높이의 변론 서류’ ‘가스레인지 크기의 4트랙짜리 녹음 기계’ 같은 책의 촘촘한 디테일이 비틀마니아(비틀스의 광적인 팬)에겐 깨알 같은 재미로, 미적지근한 음악 팬에겐 피로함으로 다가갈 것 같다.
매카트니는 비틀스의 영광을 뒤로한 채 악기 연주를 할 줄 모르던 부인에게 건반을 직접 가르쳤고, 오합지졸의 멤버들로 대학교 소강당을 전전했다. 기자들을 따돌리며 대형 차량에 악기들을 싣고 영국을 정처 없이 떠돌던 매카트니는 히피 같은 모습이었다.
저자는 매카트니가 자신의 이런 1970년대를 가장 자랑스러워했다고 썼다. “매카트니는 1970년대에 자신이 괴상한 선택을 하고 이상한 작품을 만들었던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결국 그러한 과거는 별로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폴은, 과거를 회상하며 1970년대가 자신의 업적을 대변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매카트니가 장미꽃을 입에 물고 있는 표지 사진은 린다가 찍은 것이다. 윙스의 1973년 작 ‘레드 로즈 스피드웨이’ 표지와 비슷하다. 히피처럼 꽃을 문 채 특유의 놀란 듯한 표정을 짓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저 큰 눈 뒤에 누가 있었나.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