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동북아/화정평화재단 제12차 한중일 포럼] 中 현대국제관계연구원-日 아사히신문 공동주최
23일 중국 베이징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에서 열린 화정평화재단 국제세미나에서 동아일보, 아사히신문, CICIR 참석자들이 ‘한중일 3국 협력,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아베의 독주’ vs ‘일방적 현상변경’
한중일 3국은 원인 진단부터 크게 달랐다. 후지핑(胡繼平) CICIR 원장조리(助理) 겸 일본연구소 소장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체제가 부당하다며 여기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중일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 과정에서 중국의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중일 간 대립을 조장하며 자국 이익만 추구하고 있다”며 미국도 겨냥했다.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은 “일본은 2차대전 후의 비정상 상황을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일본의 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쥔웨이(馬俊威) CICIR 일본연구소 부소장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취임 뒤 약속을 어기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한 것은 중일 관계에 과거 민주당 내각보다 더 강경한 것 아니냐”고 공박했다. 그는 “과거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1960∼1964) 총리가 냉전 때인데도 중국을 중시한 것에 비하면 아베는 반성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나아가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무기 수출을 위해 중국의 위협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이에 오노 히로히토(大野博人) 아사히신문 논설주간은 “지난해 말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데 대한 대응 측면도 있다”고 진화에 나섰다.
권순활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1990년대만 해도 한일 간 갈등을 일으키는 이른바 ‘3종 세트(역사 위안부 독도)’가 일본 국내에서 크게 부각하는 것을 자제했으나 지금은 달라졌다”며 일본의 보수 우경화를 지적했다. 권 위원은 다만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이나 개헌 문제까지 군국주의 부활로만 몰아붙이는 것은 과하다”고 말했다.
○ 갈등은 모두의 피해, 해소 필요에 한목소리
리쥔(李軍) CICIR 조선반도연구실 주임은 “한중일 3국 모두 민족주의가 거세져 지금 같은 추세라면 동북아에 ‘새로운 냉전구도’가 나타날 수도 있다”며 화해 체제 구축 필요성을 제기했다. 사와무라 와타루(澤村긍) 아사히신문 논설위원은 “유럽에서는 동중국해가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발칸 반도처럼 ‘21세기의 발칸 반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며 “일중 갈등으로 양국 모두 이미지가 손상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갈등 완화와 해소를 위해서는 첨예한 외교·안보 외에 협력이 가능한 분야부터 공통점을 확대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요시오카 게이코(吉岡桂子)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한일 간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내년 수교 50년을 맞는 동안 한 번도 기업인 교류가 중단된 적이 없었다. 국가 간 갈등과는 별개로 성숙한 민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미국의 TPP 활용 의도와 ‘중국 배제’ 논란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류쥔훙(劉軍紅) CICIR 글로벌화연구중심 주임은 “TPP는 아시아의 주요 경제체제 구축에서 미국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미국의 성공적 작품”이라고 말했다.
푸멍쯔(傅夢孜) CICIR 부원장은 “과거사에 대한 공감대 부족, 신냉전, 현실적인 세력 변동에 북한 지도자 변화까지 복잡한 정세의 동북아는 더욱 솔직한 교류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 韓 “中 북핵 방관 곤란” 中 “비핵화 목표 같다” ▼
北核해결 방안 놓고 공방
한국 측과 중국 측은 북핵 문제 해결 방안에서 근본적인 인식차를 드러내며 날 선 공방을 벌였다.
후지핑 현대국제관계연구원(CICIR) 원장조리 겸 일본연구소 소장은 기조발표에서 “북한은 외부 압력이 클수록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구현 KAIST 교수는 “북핵은 중국에도 직접적 위협이 된다”면서 “세계 강대국이 된 중국이 북핵에 대해 방관자적 입장을 취할 수 있느냐”며 중국 역할론을 요구했다.
그러자 후 소장은 “중국은 북한에 굉장히 많은 압력을 주고 있다. 비핵화 목표에서 중국과 다른 국가가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이어 그는 “비핵화를 실현하는 방법이 다른 것”이라며 “압박을 주면서도 북으로 하여금 안보 측면에서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방형남 동아일보 논설위원 겸 화정평화재단 21세기평화연구소 소장은 리비아와 이란의 사례를 소개하며 “중국은 제재와 압박이 비핵화 수단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 해결한 선례가 있다”고 밝혔다.
▼ 日 “한국, 中-日갈등 조장” 韓 “지나친 억측” ▼
‘한국 어부지리론’ 싸고 입씨름
“한국이 일본과 중국 간 대립에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으려 한다”는 일본 측 주장이 나와 논란이 됐다.
아마코 사토시 와세다대 교수는 “중일 갈등으로 중국 내에서 반일 감정이 높아지자 중국 시장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인 한국은 이를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이 반사이익 때문에 양국 간 대립을 조장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안중근 기념관 건립처럼 중국이 한국에 ‘반일(反日) 공동 행보’를 제안하는 사례가 있다”며 “중국의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환영하지만 부담스러운 측면도 없지 않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지난해 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일본과의 안보협력이 필요하다’는 응답(63.9%)이 ‘필요 없다’(26.2%)는 응답보다 많았다”며 “한일 관계 개선을 원하는 여론이 높다”고 덧붙였다.
권순활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일본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일본에 불리하게 이용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견해도 있으나 한국은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