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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리조트 참사 유족들 “심리지원, 헛말이었나”

입력 | 2014-05-26 03:00:00

붕괴 100일 되도록 정부 약속 공염불… 부산 지원센터 치료 아닌 상담만
그나마 부산外 가족들은 이용못해 결국 자비 들여 정신과 치료받아




2월 17일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 내 체육관 붕괴 사고로 딸 진솔 양(19)을 잃은 김판수 씨(53)는 부인과 함께 지인의 소개로 3개월째 부산의 한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는다. 한 달에 두 번 처방을 받고 약봉지를 100개 넘게 받아온다. 하루 세 번 3알을 먹고, 오후 11시 딸아이가 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던 시간에는 수면제와 신경안정제까지 복용한다. 김 씨는 사고 후 정부로부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어떠한 안내나 지원도 받지 못했다.

27일이면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로 부산외국어대 대학생 9명과 이벤트 업체 직원 1명 등 10명이 숨진 지 100일째가 된다. 사고 당시 정부 부처(교육부)와 지자체(부산시), 부산외대 등은 “피해자 가족들이 사고로 인한 충격을 완전히 극복할 심리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동아일보가 피해자 가족들을 취재한 결과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연락이 닿은 다섯 가족 모두 “심리 지원과 관련해 어떤 도움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정신과 치료에 필요한 병원 섭외와 비용을 자비로 해결해 왔다. 고 윤체리 양(19)의 아버지 윤철웅 씨(48)는 “정부 등으로부터 정신과 치료에 대한 지원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 부산시는 부산진구 인제대 백병원에 있는 재난심리지원센터를 피해자 가족들이 활용하도록 주선했지만 심리상담 외에 치료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또 지원센터가 부산에만 있어 다른 지역에 사는 피해자들은 이용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윤철웅 씨는 “거주지가 서울인데 부산까지 치료받겠다고 어떻게 가느냐”라고 했다. 고 강혜승 양(19)의 큰아버지 강모 씨는 “동생(강혜승 씨 부친)이 울산에 사는데 아무도 챙겨주지 않고 혼자 병원 알아보고 약 지어 먹는 상태”라고 전했다. 부산외대 내에 설치된 심리상담센터도 한 달여간 운영된 뒤 3월 말 문을 닫았다.

심리지원과 관련해 취재진이 문의하자 교육부는 “소방방재청 소관이라 잘 모른다”고 했고 소방방재청은 “학교 내에 상담센터를 운영했다”고 해명했다. 부산외대 재난대책본부 관계자는 “유가족들이 정신과 치료를 자비로 받고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고 밝혔다.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의 허술한 심리치료 지원체계로 볼 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도 홀대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내 관리하고 지원부서를 일원화하는 등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건혁 기자 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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