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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이 뒤엎은 EU정치… 극우-극좌 돌풍, 중도 퇴조

입력 | 2014-05-27 03:00:00

[유럽의회 선거 지각변동]




지속되는 유럽의 경제위기가 결국 정치의 극단화를 불러왔다. 25일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기존 거대정파인 중도파 그룹이 위축되고 극우와 극좌파 세력이 대거 부상하면서 유럽의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반(反)유럽통합과 반이민 정서를 내세운 극우파 정당이 사상 처음으로 제1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프랑스의 마뉘엘 발스 총리는 선거 결과를 두고 “전 유럽 지도자들이 마주할 지각변동”이라고 평가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로 회의론(Euroscepticism)이 돌풍을 일으켰다”고 평가했다.

○ 극우 정당의 전면 대두

26일 출구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FN)이 24.95%의 득표율로 중도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과 집권 사회당(PS)을 제치고 1위에 올라 25석을 거머쥐면서 단번에 4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2009년 선거에서 득표율이 6.3%에 불과했던 FN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1972년 창당 후 처음이다. 마린 르펜 FN 대표는 “프랑스 국민이 더는 외부(유럽연합·EU)의 지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극우 성향의 영국독립당(UKIP)이 영국 정치사에서 100년 넘게 유지돼 온 보수·노동 양당 체제의 벽을 허무는 이변을 연출했다. UKIP는 약 28%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23석을 얻으며 5대 정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당은 26%, 집권 보수당은 25%의 득표율을 얻을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이 득표율 36%로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반EU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7%로 첫 원내 진출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에서는 극좌파와 극우파가 동시에 선전했다. EU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 여당을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고 신(新)나치를 표방하는 그리스 극우정당 ‘황금새벽당’은 약 10%를 얻어 3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에서도 이민자 반대 및 EU 탈퇴를 외친 정당들이 많은 표를 받았다.

○ 요동치는 유럽의 정치 지형

이번 선거에서 극우와 극좌파의 선전은 경제위기에 지친 유권자들이 유럽 통합에 대한 피로감을 느낀 것은 물론이고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도우파와 중도좌파가 양분해 오던 유럽의 정치지형도는 ‘3당 구도’로 재편될 개연성이 커졌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파인 중도우파 유럽국민당그룹(EPP)은 28.5%의 득표율로 가까스로 제1정파를 유지했다. 존재감이 없던 극우·극좌정당 등 반EU 성향 그룹은 총 140석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EPP가 의회 내 최대 정파 유지에 성공하면서 EU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장클로드 융커 전 룩셈부르크 총리(60)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는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 의장(2005∼2013년)을 맡기도 했다.

이번 선거 투표율은 43.09%로 사상 처음으로 상승했다. 투표율은 1979년 첫 직접선거에서 61.99%를 보인 이후 계속 하락해 왔다. 특히 동유럽 국가의 투표율은 평균 32%에 그쳐 향후 EU 가입 확대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 박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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