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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 반칙운전]“이곳이 위험” 주민들 ‘빨간 스티커’에 맞춤형 교통 개선

입력 | 2014-05-27 03:00:00

[내집 앞 교통안전, 해외선 어떻게]<3>日 가마가야 ‘사고 半減 프로젝트’




과속 못하게 도로 가운데가 ‘홀쭉’ 도로와 인도의 경계가 불분명했던 일본 가마가야 시 히가시하치토미 지역의 2003년 모습(왼쪽 사진)과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가 시행된 이후 현재 도로 모습(오른쪽 사진). ‘도로폭이 감소한다’는 뜻의 글자가 바닥에 적혀 있다. 프로젝트 시행 이후 도로와 인도를 확연히 구분했고, 도로 가운데가 좁아지는 ‘협착 도로’를 설치해 안전성을 높였다. 가마가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일본 지바(千葉) 현 가마가야(鎌ケ谷) 시는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다. 이 도시의 히가시하치토미(東初富) 지역은 2000여 가구, 5000여 명이 거주하는 대표적인 주택가. 1, 2층의 나지막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1990년대 들어 한적한 이 주택가의 이면도로는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주요 간선도로가 교차하는 지역에 위치한 탓에 출퇴근시간에 간선도로가 막히기 시작하면 차들이 주택가 이면도로로 파고들어와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매해 30여 명의 교통사고 사상자가 동네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아이들이 뛰노는 내 집 앞 도로가 ‘교통사고 우범지역’으로 변한 셈이다.

하지만 시와 주민이 손을 잡고 2004∼2005년 ‘교통사고 반감(半減) 프로젝트’를 펼친 이후 사상자는 이듬해부터 10명 내외로 줄었다. 프로젝트의 명칭대로 실제 사상자를 절반 이상 줄였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까지 10년 가까이 효과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작은 기적’이 가능했을까.

○“이곳이 위험해요!”


2월 25일 가마가야 시청을 방문해 만난 교통안전 공무원들은 당시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작은 시청 공무원들만의 힘으로는 늘어가는 교통사고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시는 1999년 국제교통안전학회의 도움을 받아 사고지역에 대한 원인 조사를 시작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지원을 받아 2004∼2005년 히가시하치토미 지역에 도로 폭을 줄이고, 인도를 확장하고, 과속방지턱 등을 설치했다. 사업에는 총 1억3000만 엔(약 13억1000만 원)이 들었는데 국토교통성이 55%, 시가 45%를 부담했다.

지자체가 교통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마가야 시가 특이했던 것은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를 실시하며 실제 사고가 일어났던 지역뿐 아니라 주민들로부터 ‘교통사고 위험을 느꼈던 지역’까지 일일이 의견을 받아 안전시설 설치계획에 반영한 점이다. 사고 예상 지점까지 대책에 반영한 셈이다.

시와 주민이 머리를 맞대는 과정도 독특했다. 공청회가 열린 시청 회의실이나 마을회관의 벽에는 어김없이 큰 동네 지도가 붙었다. 시청 직원들은 주민들에게 빨간색과 노란색 스티커를 나눠준 뒤 이렇게 말했다. “동네를 오가면서 교통사고 위험을 가장 크게 느꼈던 지역에는 빨간색을, 그보다는 덜하지만 위험을 느꼈던 지역에는 노란색 스티커를 붙이세요.”

지도 곳곳에는 빨간색과 노란색 스티커가 빼곡히 붙기 시작했다. 시는 우선 스티커가 많이 붙은 지역부터 안전시설을 설치했다. 2004년부터는 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이런 의견을 받았는데 무려 3000여 건의 의견이 쏟아졌다. 시는 주민 의견 외에도 경찰의 해당 지역 사고 데이터 500여 건까지 참고해 교통안전 시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설치 과정에서도 우선 한두 곳에 시범적으로 도로 폭을 줄이거나 과속방지턱을 설치한 뒤 다시 주민 의견을 받아 추가 설치 장소를 정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주민과 소통했다.

주민과의 스킨십을 높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사노 가주히코 가마가야 시 교통안전 계장(45)은 “관(官) 주도로 행정을 펼치다 보면 의외로 비용이 더 든다. 주민 의견을 반영하고 그 역할을 높이면 안전시설에 대한 참여도도 높일 수 있고 경제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 ‘차가 불편한 도로를 만들자’


기자는 가마가야 시청 직원들과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가 시행된 히가시하치토미 정 지역 곳곳을 둘러봤다. 도로가 좁아 차량이 마주쳤을 경우 우선 한 대가 멈춰서 양보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협착도로’가 특이했다. 협착도로는 도로 가장자리에 안전봉을 설치하되 모래시계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게 만든 도로다. 중간이 좁다 보니 승용차나 소형 트럭만 통과할 수 있고, 속도를 줄여 ‘거북이걸음’으로 통과해야 했다. 자연스레 대형 트럭이나 버스는 이곳을 통해 주택가로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의 가장 큰 핵심은 ‘차가 불편한 도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협착도로를 비롯해 기존 도로 폭을 줄였고 그 대신 인도를 넓혔다. 인도에는 초록색 빨간색을 칠해 도로와 확실히 구분했으며 속도를 낼 수 있는 직선 도로에는 어김없이 과속방지턱을 설치했다. 속도를 낼 우려가 있다며 일방통행 도로는 아예 배제했다.

차가 불편해지자 보행자가 안전해졌다.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 이 지역을 통과하는 차량 중 시속 40km가 넘는 차량은 46.2%에 달했다. 하지만 안전시설이 설치된 이후 4.1%로 줄었다. 절반가량의 차량이 시속 40km로 달렸던 도로가 이제는 20대 가운데 1대만 ‘과속’을 하는 셈이다. 차량 속도가 줄어드니 사상자도 자연스레 줄었다. 사망자는 교통사고 반감 프로젝트가 시행된 이듬해인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지역 주민은 직접 참여해 이룬 성과에 만족하고 있었다. 40년간 이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 아미시 쓰카코 씨(73)는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는 엄마들이 당번을 정해서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지키곤 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도로 폭이 좁아져 차가 지나가려면 맞은편 차가 기다려야 하지만 불편한지 모르겠어요. 안전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취재에 동행한 박상권 교통안전공단 박사는 “가마가야 시는 오프라인에 익숙한 고령자, 온라인에 익숙한 젊은 세대를 아울려 온·오프라인으로 의견을 받았다는 게 인상적이다. 우리도 주민 의견을 폭넓게 얻는 방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마가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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