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개선 나선 공기업]<5>석유공사의 고강도 경영혁신
간담회가 열린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올 3월 에쓰오일은 울산에 92만 m² 규모의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8조 원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에쓰오일의 투자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알 마하셔 대표의 발언을 전해들은 한국석유공사가 에쓰오일에 내놓은 제안 덕분이다. 관리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울산 석유비축기지를 지하화하려던 석유공사가 지상 부지를 에쓰오일에 매각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공기업 정상화 정책에 따라 대대적인 부채 감축에 나선 석유공사는 이 부지를 매각해 지난해 말 기준 18조5000억 원의 부채 중 5190억 원을 줄였다. 공기업들이 빚을 줄이기 위해 잇따라 자산 매각에 나서면서 국부 유출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석유공사는 발 빠른 움직임에 나서면서 부채도 줄이고 외국기업의 투자까지 이끌어낸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 것이다.
한국석유공사가 경영쇄신위원회 출범을 통해 강도 높은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까지 부채 비율을 157%로 지난해 말보다 23%포인트 낮추는 게 목표다. 석유공사는 부채비율을 경영정상화 자구노력 이전인 2011년 193%에서 지난해까지 13%포인트 줄인 바 있다. 또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자산 합리화를 추진한 결과 지난해까지 1조3000억 원을 마련한 데 이어 2017년까지 4조 원가량의 투자 재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유망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의 투자 유치를 통해 약 13억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확보했다. 석유공사는 미국 앵커(Ankor) 유전광구와 이글포드(Eagle Ford) 광구에 투자자를 유치해 8억 달러를 조달했으며 석유공사가 지분을 투자한 미국 EP에너지와 캐나다 하베스트의 보유자산 유동화를 통해 3억4000만 달러를 확보했다. 또 영국 다나 등 3개 자회사의 보유자산을 매각해 1억4500만 달러를 조달했다.
석유공사는 또 지난해 12월 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해 부채비율을 더욱 획기적으로 낮출 계획이다. 서문규 사장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경영쇄신위원회는 부채관리와 자산 합리화, 기술 자립화, 경영혁신을 비롯한 4개 분야로 구성됐다. 이 위원회를 통해 해외 자원개발을 탐사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투자비를 축소할 방침이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양적성장에서 질적성장으로 전환하는 경영 내실화를 통해 투자비를 줄이고 부채비율을 낮추는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며 “해외 사무소 등 조직과 인력 구조조정 등 경영개선도 병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석유공사가 미국 석유기업 아나다코와 함께 셰일가스를 생산하고 있는 미국 텍사스 주의 이글포드 광구. 석유공사는 2015년까지 셰일가스 개발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석유공사 제공
또 석유공사는 미국발(發) 에너지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셰일가스 사업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셰일가스 채굴 기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석유공사는 셰일가스 개발기술의 자립화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셰일가스 개발기술 고도화 3단계 프로젝트’를 통해 이르면 2015년 국내 최초로 원천 기술로 셰일가스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석유공사는 이미 2011년 미국의 석유기업 아나다코와 함께 텍사스 주 매버릭 분지의 이글포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 석유공사는 하루 4만2800배럴의 셰일가스를 생산해 북미지역에 판매하고 있다. 이글포드 광구에서는 지난해 1억1865만 배럴을 생산해 매출 4억5200만 달러, 당기순이익 4600만 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캐나다 하베스트와 미국 앵커 등 북미지역 자회사와 공동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텍사스 A&M대 등 해외전문기관과도 공동 연구개발(R&D)을 진행하고 있다”며 “국내 첫 셰일가스 사업 참여 기업으로서 이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통해 공사의 생산성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 해외사업 내실화 통해 탐사성공률 19%P↑ ▼
이라크서는 사상 최대 원유 확보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공사의 상업적 탐사성공률은 45%로 2012년(26%)보다 19%포인트 높아졌다. 상업적 탐사성공률은 탐사에 들어간 광구 중 투자비를 회수하고 적절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광구로 확인된 광구의 비율을 말한다. 해외 주요 자원개발 회사들의 상업적 탐사성공률이 20%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높은 수치다.
석유공사가 탐사성공률을 높인 데는 이라크 등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한 데 따른 것이다. 최근 원유 상업생산을 시작한 이라크 하울러 광구는 2억5800만 배럴의 원유 매장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 이는 지금까지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확보한 원유 중 최대 규모다. 오릭스(65%), 쿠르드 자치정부(20%)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5%의 하울러 광구 지분을 갖고 있는 석유공사는 확인된 매장량 2억5800만 배럴 중 3900만 배럴의 소유권을 갖는다. 이는 지금까지 석유공사가 참여한 원유 탐사 사업 중 최대 매장량을 확보했던 리비아 엘리펀트 광구의 2200만 배럴을 넘어서는 규모다. 특히 현재 진행하고 있는 추가 시추 결과에 따라 하울러 광구의 매장량은 최대 6억 배럴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 석유공사의 원유 확보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
또 석유공사는 알짜 사업으로 꼽히는 시추선 사업을 통해 지난해 역대 최고인 83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석유공사의 대표 시추선인 두성호는 미국 셸이 선정한 세계 137개 시추선 중 3대 시추선으로 꼽혔다.
이와 함께 석유공사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012년 전남 여수에 820만 배럴의 저장시설 조성을 마무리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울산 오일허브 북항 사업을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오일허브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2만2000여 명의 고용 창출은 물론이고 4조50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석유공사 관계자는 “오일허브 사업은 유사시 우리나라의 석유 수급 위기 대응능력을 높여 석유 안보에 기여할 뿐 아니라 금융과 석유제품 유통과 같은 연관 산업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