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애증의 현장을 찾아/3부:미래를 향해]<上>‘바늘과 실’ 경제협력
“한일 경제협력은 윈윈” 한일 기업의 협력 확대가 양국 미래를 밝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아이치 현 오카자키 시 미쓰비시자동차 조립 공장(위쪽)에선 2011년 말부터 한국 현대모비스의 헤드램프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기후 현 오가키 시 오가키정공의 우에다 가쓰히로 사장(아래쪽 사진)은 초정밀 금형을 한국과 일본에서 절반씩 가공할 계획이다. 오카자키·오가키=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과거 일본 자동차업계는 주로 일본산 부품으로 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5, 6년 전부터 한국에서 조달하는 부품이 늘기 시작했다. 사토 부장은 “한국 부품업체들의 기술력이 크게 성장했다. 거리도 가까워 물류비가 적게 든다”며 분업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미쓰비시자동차는 타이어, 알루미늄 휠, 스위치 등 10여 개 부품을 한국에서 수입해 사용한다.
한일 경제 관계는 1997년 외환위기 이전에는 수직적 분업구조로 인해 한국 기업이 일본의 하청기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요즘 수평으로 바뀌고 있다. 대등한 관계에서 부품을 나눠 쓰거나 제3국에서 공동 투자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 대등한 관계로 진화하는 경제협력
“한일 경제는 ‘윈윈’ 관계입니다. 한국의 성장이 일본에 플러스가 되고 일본의 성장이 한국에 플러스가 되는 관계를 구축해왔습니다. 한일 간 어려운 문제들이 있지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교류를 하길 기대합니다.”
13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나가타(永田) 정 총리관저. 한일경제협회 회장단을 맞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양국 경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양국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외교관계가 악화돼도 경제 협력 강화는 빼놓지 않고 언급해왔다. 경제협력은 미래 지향적 관계를 이어가는 데 ‘숨겨놓은 카드’ 역할을 해온 셈이다.
수출 지향의 공업화 정책을 추구하던 한국 경제의 경쟁력 향상과 글로벌 시장의 긴밀한 생산 구조는 경제 협력을 위한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기후(岐阜) 현 오가키(大垣) 시에 있는 오가키정공은 초정밀 금형 제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다. 특히 세계에서 4개 업체밖에 만들지 못하는 컴퓨터용 하드디스크(HDD) 정밀 부품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전기 등 한국 기업은 이 부품을 수입한 단골 고객이었다.
김현태 KOTRA 나고야(名古屋)무역관장은 “이제 한국 기업은 일본에서 대등한 수준의 제품을 만드는 파트너로 올라섰다”며 “특히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들이 부품조달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국 파트너를 찾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용 원격지원 프로그램 기술을 갖고 있던 한국 중소기업 알서포트(RSUPPORT)는 2009년 “스마트폰용 원격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며 일본 최대 통신사인 NTT도코모의 문을 두드렸다. 수백 번의 회의와 기술 시연 끝에 도코모는 2011년 10월 알서포트와 계약을 맺고 모든 스마트폰에 알서포트의 원격지원 애플리케이션을 올리기로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되자 도코모는 2012년 12월 10억9000만 엔(약 110억 원)의 자본을 알서포트에 투자했고 올해 3월 두 회사가 출자한 합작회사 모비도어스를 설립했다.
올해 3월 13일 도시바(東芝)는 기술을 유출해갔다는 혐의로 한국 SK하이닉스에 소송을 제기했다. 도시바는 “기술 유출로 1조 원의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도시바는 “소송과 최첨단 반도체 공동개발은 별개”라고 말하면서 SK하이닉스와 공동개발 제휴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한때 대립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국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한일 기업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15일 일본 도쿄 오쿠라호텔에서 열린 제46회 한일경제인회의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경제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淺田眞央)처럼 경쟁하면서 성장했다”며 “한국과 일본 기업이 물 위에서는 경쟁 관계를 보이고 있지만 수면 아래서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카자키·오가키·나고야·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