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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고미석]북이 드라마 ‘정도전’을 겁내는 이유

입력 | 2014-05-29 03:00:00


‘고려가 버린 아웃사이더.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혁명가로 다시 태어난 사나이’.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 홈페이지는 삼봉 정도전(1342∼1398)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는 격동의 세월, 새 왕조의 설계자로 활약한 삼봉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정통 사극의 인기가 뜨겁다.

▷드라마 ‘정도전’ 열풍이 휴전선을 넘어 북으로 옮겨간 것일까. 최근 북한 정권이 ‘정도전’의 불법유통을 철저히 차단하라는 지시를 전국 보위기관에 내렸다고 한다. 북녘 주민들에게 한류 드라마를 못 보게 하는 것이 새삼스럽진 않아도 이번처럼 특정 드라마를 콕 집어 단속하라는 지시는 극히 이례적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현대판 왕조국가에서 ‘정도전’을 겁내는 이유를 “자신들이 금기시하는 역성혁명을 다루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통독 과정에서 동독 주민의 서독 TV 시청은 의미있는 역할을 했다. “동독 주민들은 오후 8시부터 서쪽을 향하고 있다는 농담이 생길 만큼 서독 TV를 많이 시청해 서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로타어 데메지에르 전 동독 총리가 해준 얘기다. 실제로 동독 정부는 1952∼1971년 서독 TV의 수신을 엄격히 단속했지만 1971년 이후 시청을 사실상 묵인하고 1980년부터 자유로운 시청을 허용했다. TV 시청을 완벽하게 통제할 방법도 없는 데다 체제붕괴의 위험성이 없다는 확신에 주민 불만을 달래겠다는 정책적 판단의 결과였다.

▷조선의 개국 공신으로 정적의 칼에 목숨을 잃고 어둠 속에 묻혀 있다 조선이 저무는 시기인 고종 때 관직을 되찾은 삼봉. 그의 꿈은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세상이었다. 드라마 한 편이 지구상 가장 폐쇄된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이다. 남녘 방송을 맘대로 볼 수 있는 지도층이 삼봉의 가르침에서 ‘인민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배운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하지만,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배반하게 된다.’(조선경국전)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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