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1952∼ )
1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찔러
실로 음각을 뜨는 거야
흰 머리카락을 뽑아 바늘에 꿰어
깊은 우물 속, 두레박이 새지 않게 물을 깁는 거야
바느질이 목숨이었던 어머니, 실 떨어지면
명주 올처럼 길고 흰 머리카락을 뽑으셨지
어룽이다 꺼져가는 그늘과
찢어진 가족의 무늬와 식탁을 바늘로 이어 가셨지
2
어머니가 가셨던 길처럼
한 올 한 올 바늘로 쪽빛 모시를 꿰맬 때마다
멀리 떠난, 더는 깁을 것이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지
평생 바늘과 옷감을 놓지 않으신 어머니
그것으로 가족을 기워 둥근 띠를 엮으셨던 어머니
아버지 없는 둥근 밥상에 오글오글 새끼들만 모여
밥상까지 통째로 먹는 허기진 아이들
명주에 들어간 바늘이 실을 끌고 다닐 때
천이 제 몸들을 꼬옥 껴안지 못하면 바늘은
성글게도 허공과 손가락만 꿰매 놓곤 했지
둥근 밥상 앞에서도 새끼들 입에
당신 몫까지 다 내어 주고 등 돌려 바느질만 하시던 어머니,
그 시린 등을 이제사 껴안고 난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어
‘가장 깊은 그늘을 꿰매는 거야’는 화자의 바느질 철학일 테다. 어머니에게서 화자에게 전해진 것이 바느질 솜씨뿐 아니라 ‘깜깜한 무늬와 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삶인 듯도 해 울컥해진다. 하지만 화자는 어머니의 ‘시린 등을 껴안고 쪽빛 모시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시를 맺는다. 모녀의 삶이 한 쌍 쪽빛 나비로 우화(羽化)하는 듯, 아름다이 시린 바느질이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