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때때로, 선배의 말이 떠오르곤 했다. 아픈 일, 슬픈 일,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선배의 말이 묘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이 또한 곧 지나갈 것 같아서. 이 또한 곧 잊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됐다. 너무 아파서, 너무 창피해서, 너무 힘들어서, 자다 가도 벌떡 깨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밤들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진 않았다. 아픔은 옅어지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래서 또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도, 믿게 되었다. 인간이 가진 모든 능력들 중,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일 수 있겠다고. 힘든 세상에 던져진 인간들을 가엾이 여긴 신이 주신 선물, 그게 바로 망각일 수 있겠다고.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그 선물을 넙죽넙죽 잘 받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또 눈물이 터졌다. 나는 사실 눈물이 많은 편도 아니고, 이렇게 펑펑 울어본 지는 참 오래됐는데, 이번 달에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퉁퉁 부은 무거운 눈으로 하루를 보낼 생각에 짜증도 나고, 그럼에도 눈물이 나는 이 상황에 화도 나고,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무력함에 또 지치고, 그때 마침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투정을 부리게 됐는데, 친구 역시 요즘 자꾸만 눈물이 터져 힘들다고 하니, 문자 창에 “정말, 힘들어서 못 살겠…”까지 쳤나 보다.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사람은 너무 힘들면 도망가게 돼 있어. 자기 보호 본능이지.’ 오래전 선배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내가 도망가면 어떡하지, 나만 살겠다고 모른 척, 나만 좀 편해지겠다고 잊으면 어떡하지.
강세형 에세이스트